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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홀했는가?" 미얀마에서 온 90년생 환자가 내 진료실을 찾았다. 근처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노동자이다. 일을 하다가 갑자기 찾아온 통증으로 나를 찾았다. 영어는 불가했지만, 한국어를 일단 알아 들을 수는 있기도 하고, 간단한 대답은 할 수 있었지만, 무언가 복잡한 내용을 설명하려니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빌릴 수 밖에 없었다.처음엔 미얀마, 즉 버마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내 머릿속에 있는 미얀마에 대한 정보는, 태국 서쪽의 나라이자 아웅산 수치 여사로 유명한 나라라는 것 뿐이었다. 그 때문에 언어나 문자를 무엇을 쓰는지도 처음에 감이 잡히지 않았으나, 같이 온 직장 동료(베트남인, 이 사람은 한국어가 유창하다.)가 "이 친구들도 자체 언어가 있어요 선생님!"이라 말해주어, 곧장 '버마어' 항목을 찾아 번역.. 2024. 7. 10.
스티브 맥퀸, <셰임 SHAME> 1. 사실 10여년 전, 이 작품의 예고편을 보고 "아오 또 뉴욕 여피놈년들이 일하고 술먹고 XX하고 그런 이야기겠지."하고 덮어놓았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 다시 이 작품을 접하니, 이거 예술이네.2. 자신의 은밀한 취미, 취향 등이 타의에 의해 드러나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게 이 영화의 제목 의 전부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3. 주인공의 정사씬을 보면, 분명 찐하긴 찐한데 전혀 제대로 된 정신머리를 가진 상태에서 '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있다. 눈이 일단 썩은 동태눈 내지는 서울 비둘기 눈깔이다. 실로 영혼없는 그짓.4. 평소에도 전형적인 성공한 소시오패스처럼 행동한다. 영혼없이 행동한다. 심지어 직장 상사와 같이 찾아간 어느 술집에서 어떤 여자를 꼬드기려 들 .. 2024. 7. 8.
빔 밴더스, <퍼펙트 데이즈> "나중은 나중, 지금은 지금!" 「今度は今度、今は今。」인생은 딱 한번뿐이니, 아무렇게나 계획없이 멋대로 살자는 소위 '욜로YOLO'를 말하는게 아니다. 본인 스스로가 매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보내는 하루는 소중하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뻔한 이야기다. 그래. 심히 뻔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매일 자신이 겪는 '루틴'이 뭔가 지겹고 짜증난다 느낄때면 이 영화를 보라 자신있게 말해주고 싶다. 그 뻔한 이야기를 야쿠쇼 코지라는 일본이 낳은 불세출의 명배우가 '몇 안되는' 대사. 그리고 절제된 몸짓, 표정 등을 통해 이야기해준다. 야쿠쇼 코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야쿠쇼 코지니까 할 수 있는 연기로서 말해준다.권위에 기댄 오류를 범하려는게 아니다. 칸 영화제의 심사위원들이 왜 야쿠쇼 코지를 남우주연상.. 2024. 7. 5.
홍상수, <그 후> 1. 영화 맨 마지막, 출판사 사장(권해효 분)은 여주인공(김민희 분)에게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책을 선물로 준다. 아마도 영화와 같은 제목의 라는 소설책일듯 싶다. 아직 내가 나쓰메 소세키의 그 책을 읽어보지 못해서, 이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풀어내긴 어렵다. 하지만 홍상수 영화가 늘상 그러하듯, 소설책의 내용과 영화의 내용은 긴밀한 관계를 갖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냥 '영화적 장치'의 하나 정도일듯. 2. 아마 '그 후'라는건, '바람을 피운 후'를 의미하는건지 모르겠다. 여튼 주인공 출판사 사장은 출판사 직원과 바람을 피우는 사이가 맞다. 그 와중에 사장 아내는 또 다른 출판사에 들어온 직원(김민희)을 상간녀로 오해하여 손찌검을 하고 욕설을 퍼붓는다.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 자신이.. 2024. 5. 28.
홍상수, <밤의 해변에서 혼자> 1. 아무래도 '문제적'(?) 감독과 배우의 작품이다보니, 이 작품을 두고 자기 변명하려는 홍상수라고 깎아내리는 사람 아니면 영화적으로 아주 괜찮은 작품이라 칭송하는 사람으로 뚜렷하게 양분화되는것 같다. 중간항, 연속스펙트럼을 찾아보기 어렵다. 2. 다른 모든것을 제쳐두고, 김민희의 연기는 '명품'이었다. 저게 연기인지 사적인 김민희라는 사람 모습 그대로인지 잘 모르겠다. 정말이지 '천연덕'스러웠다. 그리고 실제 김민희는 이 영화로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은곰상을 수상한다. 3. 언제나 그렇듯, 영화 외적인 것은 최대한 제쳐놓고 보려 노력했다. 언제부터인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엔 은근슬쩍 피식 웃을 수 있는 부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여기선 1부 말미에 갑자기 김민희를 들쳐 업고 무심하게 갈 .. 2024. 5. 28.
'사람'이 먼저다? 오래 전, 국회에서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이런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라고 열변을 토하던 사람이 있다. 최근 그 사람은 결국 자기를 향한 충성심이란 유일한 잣대로 난공불락의 성(城)을 쌓으려다 실패했다. 성을 쌓기는 커녕, 지금 있는 것도 쉽게 지키기 어렵게 되었다. 헌데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을 둘러싼 상황 파악이 하나도 안되고 있는 모양이다. 특정 질병의 이름을 본딴 그에 대한 멸칭을 쉽게 찾고 보고 읽고 들을 수 있고, 그가 정말 좋았다던 사람들 마저도 지금은 그의 얼굴만 봐도 지긋지긋하다는 말을 토해내기에 바쁘다. 불과 2년만에 달라진 내 주변의 상황이다. 잘 안다. 내가 술에 취했다 해서 세상이 전부 취한 것은 아니란걸. 내가 행복하니 세상이 모두 꽃밭은 아니란걸. 내가 슬프다고 하.. 2024. 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