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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흔적 生の跡

"소홀했는가?"

by 이웃집박선생 2024. 7. 10.

미얀마에서 온 90년생 환자가 내 진료실을 찾았다. 근처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노동자이다. 일을 하다가 갑자기 찾아온 통증으로 나를 찾았다. 영어는 불가했지만, 한국어를 일단 알아 들을 수는 있기도 하고, 간단한 대답은 할 수 있었지만, 무언가 복잡한 내용을 설명하려니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빌릴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엔 미얀마, 즉 버마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내 머릿속에 있는 미얀마에 대한 정보는, 태국 서쪽의 나라이자 아웅산 수치 여사로 유명한 나라라는 것 뿐이었다. 그 때문에 언어나 문자를 무엇을 쓰는지도 처음에 감이 잡히지 않았으나, 같이 온 직장 동료(베트남인, 이 사람은 한국어가 유창하다.)가 "이 친구들도 자체 언어가 있어요 선생님!"이라 말해주어, 곧장 '버마어' 항목을 찾아 번역기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 친구의 휴대폰 화면을 슬쩍 보게 되었는데, 아내와 아이 한 명과 같이 함박 웃음을 지으며 찍은 가족사진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또 번역기를 사용하여 가족들은 지금 고국에 계신지 물어보자, 그렇다고 하였다.


아무래도 사람인 즉, 특히나 나같은 간사한 사람은 앉으면 눕고싶고, 누우면 잠들고싶고 그저 놀고 먹으면서 배부르고 싶은 마음만 가득한, 그런 인간이지만 이 친구가 고국의 가족들을 생각해가며 먼 땅에서 일하고 이처럼 고생하는 모습을 보자 순간 내 스스로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열심히' 산다는게 무엇인지 나는 아직 잘 알지 못하겠고, '잘' 산다는게 무엇인지는 더더욱 알지 못하겠다. 태생부터가 반골 기질이 강한 내 성격상 지금도 이미 "그래야만 한다"는 삶에서 점점 경로를 이탈하여 살고는 있지만, 적어도 '불성실'한 삶은 살지 않아야 하겠다 다짐한게 엊그제였는데...


모쪼록 오늘 나를 찾아온 이 미얀마인 친구는 한 세 번 정도는 나를 더 찾아오게 될 것 같다. 앞으로는 존경의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게 될 것 같다. 내가 앞으로 가정을 가질지, 또 자녀를 볼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무언가 내 자신에 대해 소홀해지기 시작할 때마다 나는 이 친구를 떠올릴 것 같다. 이 친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소홀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자기가 지켜야 할 가족에 대해서도 성실한 사람이 아니던가. 당신, 부디 건강해져야 한다네. 고국의 가족들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당신 자신을 위해서.


아무튼, 앞서 말한 것의 반복이지만. 오늘 참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고, 이 친구를 앞으로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오늘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화두를 던진다. "(삶에) 소홀했는가?"

 

어느 여름 날이었다.

 

2024.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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