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타인의 말을 듣다가 갑자기 남의 말을 자르고 불쑥 내가 말을 하고 싶어진다면, 내가 존나게 똑똑하다고 착각하는건 아닌지 속으로 잠시 멈추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분명 멍청한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똑똑한 놈은 아니다.
2. 집에 돌아와 <쉘 위 댄스>를 보았다. 넷플릭스를 통해 편하게 볼 수 있었지만, DVD를 소장하고 있기에 직접 디스크를 꺼내 드라이브에 넣고 영화를 보는 재미를 느끼고 싶었다. 정확히는 오는 일요일, 일본의 대 배우이자 연기의 신神이라 불리우는 야쿠쇼 코지役所 広司의 방한 겸 무대인사 때문에 다시 꺼내본 것 맞다.
3. 오오누키 타에코大貫 妙子의 목소리를 어렵게, 현학적으로, 철학적이며 언어적으로 심플하면서도 화려하게. 네이팜처럼 차가웁게, 철조망처럼 부드럽게. 그렇게 표현하고 평론을 할 능력 따윈 나에겐 없다. 다만 그저 그녀의 노래가 듣기 편해서 좋다. “셰-ㄹ 위- 땐스.”
4. “Bid me discource, I will enchant thine ear.”
- 내가 영어를 입말로서 유창하게, 또 글로서 잘 읽고 잘 쓰는건 아니지만, 어째서인지 you, your, yours의 고어古語 표현인 thee, thy, thine같은 단어만 보면 뭔가 숨이 가빠진다. 내가 변태라 그런갑다, 하며 사는 중이다.
5. 이어서는 또 다시 <강원도의 힘>을 보았다. 정말이지 이 영화에 대해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아니 술 없이도 떠들수 있을 정도로 깊은 인상을 받았고, 지금도 계속 받고 있는 작품이다. 글재주가 없어서 여기 다 풀어낼 수 없다. 그렇다고 내 말재주가 좋은건 또 아니지만, 어찌됐든 이 작품에 대해선 정말로 밤새도록 떠들어 볼 자신이 있다.
6. 기쁘고 행복한 영화에 이어, 곧바로 뭔가 슬프면서도 한없이 차가운 영화를 이어서 보는것도 다 내가 변태라 그런거다 편하게 마음을 먹어보려 한다.
7. 최근. 일신상 심히 안좋은 일 투성이였다. 상투적인 표현일지 모르지만, 위안을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행위에서 받게 된다. 끝내 ‘실질적’ 위안을 주는 이들은 나를 필요로 하여 먼저 나를 불러주고, 또 나에게 도움이 될 손길을 내어주는 고마운 이들이다. 직업 특성상 매일 수많은 사람에게 치이고, 속되게 말해 ‘기가 빨리고’ 심적으로 지쳐버려, 그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고 대화도 하고 싶지 않고, 그저 집에 혼자 있고 싶을 때에도 누군가가 내미는 손을 그저 그리워하게 된다. 헛살지 않은것 같아 감사하다.
2024.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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