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가 갖고싶은데, 집에 둘데가 마땅치 않았다. 그런데 쭝국제 '접이식' 디지털 피아노가 있다고 한다. 지름신이란 이런때 맞이하여 작두에 오를 수 있는것일까? 냉큼. 초고속. 즉시. 구입을 하였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있다. 유튜브 등에서 이 제품에 대한 리뷰는 이미 보았기 때문이다. 음질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직접 받아보았을 떄 키 무게감이 관건이다. 스타인웨이 앤 선즈 정도는 커녕, 옆집 삼익 업라이트 피아노 수준의 타건감 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장난감스럽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피아노를 그만둔 때는 초등학교 4학년 때다. 가세가 기운것도 너무 지나치게 기운 탓도 있겠지만, 내가 음악 자체에 흥미를 잃어버린 것이 더욱 큰 문제였다. 그렇다고 내가 피아노 연주하는데 재능이 있었는가? 하면 그런건 또 아니었기에, 피아노 구입이 약간 망설여졌던게다.
내가 얼마나 머리가 나쁘고 손과 머리가 따로 노는 놈이냐 하면, 당시 다른 친구들 한두달이면 끝내는 바이엘(상) 떼는데 수 개월이 걸렸고, 바이엘(하)떼는데 또 수 개월이 걸렸더란다. 그 뿐이던가. 소위 '하농'이라 불리우는 연습곡집은 일단 음표가 많아 짜증났고, 부르크 뮐러 소품집엔 그나마 흥미가 있긴 했는데, 내가 연주하자니 더 짜증이 나더란다. 내가 제대로 연습하지 못한 것을 탓하지 않고 공기가 나빠서, 건반이 이상해서 라는 둥 엄한 변명짓거리를 하며 연습을 하지 않았더란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 부끄러운 짓이다.
그나마 피아노 학원 다닐때 옆에서 연습하던, 새콤달콤 잘 나눠주는 착한 6학년, 예쁜 누나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6번을 아름답게 연주하는 것과 베토벤의 바가텔, 소위 '엘리제를 위하여'로 알려진 작품을 연주하는데서 다시 음악에 대해 흥미를 찾아갈 뻔 하였으나, 집안 사정으로 이사 및 전학을 가게 되어 자연스레 피아노 학원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찌 몸은 늙었어도, 손꾸락 근육이 그때 그 시절은 기억하는것인지 지금도 건반 앞에 앉으면 뭔가 깨작깨작 할 수 있기는 한데, 이제는 그 '깨작깨작'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언제부턴가 휩싸이기 시작했다. 특히 음악 전문 출판사인 포노 에서 나온 <다시, 피아노>라는 책을 읽고 난 후, 그리고 작년 사카모토 류이치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다시 그분의 피아노 연주곡들을 쭉 다시 들으면서 부터 천천히 '깨작깨작' 건반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행동으로 옮겨보려 하는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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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삶의 '목표'라는게 없어 정신적으로 조금 공허했긴 했다. 퇴근하고 난 후 집에 오면, 혹은 극장에서 혼자 또는 누군가와 둘이서 영화를 생각 없이 보기도 하고, 책은 읽는둥 마는둥, 흰 것은 종이고 검은 것은 글자라는 수준으로 제대로 '독서'하지 못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정말로 사소하고 값싸지만, 목표가 하나 생겼다. 거창하게 지금부터 거장 클래식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하고자 다짐하지 않겠다. 소소한 작품들 부터 시작해보련다. 일단 어린 시절 잠시 흥미를 가졌던 부르크 뮐러 소품집을 유쾌하게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가보도록 하자. 그리고 사카모토 류이치 선생님의 <Aqua>에 깊은 생각을 담아 연주할 수 있는 수준은 가보도록 하자.
그나마 악보 읽기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까먹은건 아니라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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