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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목소리 星の声

Bruckner Symphony No. 7 in E major,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지휘

by Fred.Park 2018. 10. 31.



거장. 마에스트로. 아무에게나 붙는 이름이 아니다. 어떤 양복 브랜드에서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는 쉽게 들을 수도, 붙일 수도 없는 이름이다. 거장. 마에스트로.


완전히 민 머리에 부리부리한 눈빛. 우리가 지휘자 하면 흔히 생각하는 연미복이 아닌 차이나카라의 검은 옷, 혹은 김정은의 인민복 처럼 생긴 옷을 입은 음악가. 누가 이 사람을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라 볼까? 마블 코믹스의 <엑스맨>시리즈에 나오는 프로페서X의 현실판이라 말하면 어느정도 믿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뤽 베송의 <제 5원소>같은 영화에서 나오는 악역 외계인이라 불러도 좋을지? (마에스트로! 용서하소서.)


바로 크리스토프 에센바흐에 대한 이야기다.


몇년 전 이분을 직접, 그것도 바로 눈 앞에서 뵌 적이 있었다. 급작스레 정명훈 선생님이 서울시향 상임지휘자 자리에서 물러나신 뒤, 이후의 연주 일정을 위해 급하게 모셔온 사람들 중 하나가 바로 이분이었다.


정명훈 선생님 역시 세계적인 지휘자긴 했지만, 마에스트로 크리스토프 에센바흐는 독일권 본토에서도 쉽게 만나기 힘든 세계구급 지휘자였다. 그런 사람을 내 바로 눈 앞에서 만날 수 있었다니. 이것은 일생일대의 환희였다.


2016년 1월 9일의 일이었다. 세종문화회관의 열악한(?) 환경을 뛰어넘어 서울시향과 에센바흐는 브루크너 9번 교향곡을 성공적으로 연주해냈다. 그동안 정명훈의 서울시향에 부정적인 생각과 말과 행동이 가득했던 이들에게 "우리의 힘을 보여주리라!"하듯 죽을 힘을 다해 연주했다는 것이 단원들의 표정에서 보였고, 그런 단원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 에센바흐 역시 "내가 비록 임시로 지휘한다 하지만 절대 대충 넘어가지 않으리라!"하는 힘을 객석에서 느낄 수 있었다.


'힘'있게 연주한다는것은 반드시 '포르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포르테 기호의 갯수가 곧 지휘자와 단원들이 가진 음악적인 힘과 정비례하는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음악에서 나오는 힘은 내가 이 음악을 과연 얼만큼 알고 있으며, '나' 역시도 얼만큼 여기에 몰입했는가를 정확히 믿고 알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그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능력이다. 그것이 바로 '힘'이다. 그 힘을 느낄 수 있어 행복했던 1월의 겨울밤이었다.


최근 불면증이 심하다. 겉으로 내색은 잘 안하려 노력하지만 결국 드러나는게 있는가 싶다. 어떤 친구는 나에게 제발 휴식다운 휴식을 가지라 말하기도 한다. 최근 일신상으로 짜증스러운 일이 참 많다. 그때 그 겨울밤 바로 눈 앞에서 만났던 그분의 지휘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 잠시 죽음에 이르렀다가 아침에 다시 부활하여 새로운 하루를 잘 견뎌낼 수 있기를.


2018. 1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