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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목소리 星の声

"Romantische"

by Fred.Park 2017. 12. 18.


Anton Bruckner (1824-1896)


새벽 안개가 자욱하게 펼쳐져 있다. 그러다 이내 여명의 선잠을 깨우는듯한 호른 소리가 들린다. 분명 들리는 소리는 오케스트라 호른인데, 만년설로 덮인 산봉우리가 곧바로 보이는 북유럽의 어느 마을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브루크너의 (공식적으로는) 네번째 교향곡인 "낭만적"(Romantic, Romantische) 내림마장조 첫 악장의 도입부에서 들리는 소리다.

현악기의 트레몰로로 시작하는 브루크너 특유의 '브루크너 오프닝'은 몽환적인 기분을 느끼게 하는데, 특별히 여기서는 "낭만적"이란 제목을 붙여 동이 트기 직전 가장 어두운 때의 새벽 안개가 눈 앞에 펼쳐진 듯한 인상을 느끼게 한다. 그러다 이내 동이 트기 시작하며 새벽의 선잠을 깨우는 듯한 호른 소리가 들린다. 잠에서 일어나고 나면 현악 5부는 천천히 상승했다가 딴-딴-단단단으로 대표되는 특유의 '브루크너 리듬'으로 대단원의 서막을 열게 된다.

보통 우리가 낭만적이라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남녀간의 애정을 주제로 한 문학 작품이나 영화를 떠올릴까? 아니면 매일마다 귀를 간지럽히는 멘트로 연인을 기쁘게 하는 남자를 떠올리며 낭만적인 사람이라 해야 할까? 그래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도대체 낭만적이란 말은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다. 기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이지만, 알고보면 사전적 의미가 꽤나 생경한 말들이 꽤나 많은데 바로 이 '낭만적'이란 말도 그러했다.

낭만적 浪漫的

1.현실적이지 않고 신비적이며 공상적인 것
2.현실적이지 않고 신비적이며 공상적인

(다음 어학사전)


더 정확한 의미를 알아보고자 '낭만'이 무엇인지도 찾아보았다. 국어사전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낭만 浪漫

감정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심리적 상태

(다음 어학사전)


아무래도 브루크너의 교향곡 4번은 이 두가지 의미를 모두 다 갖고 있는 것으로 보는것이 맞다고 보여진다. 단순히 브루크너가 고전적 형식에 치우치지 않은 후기 낭만주의 작곡로 분류된다고 해서, 또 브루크너 교향곡 4번이 '감정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심리적 상태'를 띤 음악이라서가 아니다. 음악 전체가 주는 느낌 전체가 이 모든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어서다. 단순히 한가지 의미와 측면만을 보고 브루크너 교향곡 4번을 감상하고 평評할 수 없는 노릇이다.

브루크너의 독창적인 작곡기법은 당시 감상자들에게 꽤나 생경하게 다가왔던듯 싶었다. 브루크너 휴지라 하여 잠시 모든 악기가 연주를 멈추는 것, 그 때문에 연주가 끝이 난건지 중간서 그만둔건지 모를 의아함을 선사하는 것. 브루크너 오프닝이라 하여 아침 안개가 자욱한 때 처럼 현악기들의 트레몰로로 조용히 시작하는 교향곡의 오프닝. 브루크너 리듬이라 하여 딴-딴-단단단으로 셋잇단음표를 사용하는 리듬. 그러나 이들중 브루크너 휴지를 제외한 대부분 작곡가 자신의 고유의 기법을 사용한 작품임에도 당시 사람들에게 꽤나 호평을 거둔 작품으로 남은것은 그만큼 작품이 주는 인상이 '확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작품이 주는 인상이 '확실'하다는 것은 작품을 이해하기가 쉽다는 것, 작품을 듣고 특정한 풍경이나 장면을 떠올리기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 브루크너 교향곡 4번은 총 11개의 교향곡 중 그렇게 처음으로 '대중적'인 작품이 되어 오늘날까지 남게 되었다. 1악장에서 북유럽 어느 산골마을의 새벽안개, 호른소리에 깨는 잠, 사냥터로 나가는 말발굽소리,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일들. 시끌벅적하기도 한 풍경들. 2악장에서 다시 밤이 되어 잠들었다가 3악장에서 다시 금관의 팡파르로 시작하는 '행진'. 4악장에서의 '전쟁'과 같은 비장함. 마치 북유럽 신화를 음악으로 풀어내 그것을 듣는듯. 아니면 중세 유럽 어느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장면을 떠올리는듯.


2017. 12. 18. 감상 노트 메모 초고
2017. 12. 25.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