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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목소리 星の声

첼리비다케, 그리고 브루크너

by Fred.Park 2016. 6. 12.


세르주 첼리비다케(Sergiu Celibidache), 루마니아 출신의 명지휘자다.
이 사람의 지휘자로서의 실력은 나중에 논해보더라도 이 사람의 연주엔 특이한 면이 한 가지 있다.

같은 작품이라도 첼리비다케가 지휘한 작품은 10분~20분 정도 러닝타임이 더 길다. 그의 연주시간이 긴 이유는 그가 같은 작품을 다른 지휘자들과 달리 느리게 연주하기를 지시하기 때문이다.

첼리비다케가 선불교 신도이기에 참선하는 기분으로 지휘를 구상한다는 소리도 있고, 실제 그가 "느려야 진정한 음악의 미가 나온다."는 어록을 남긴 바 있는데 모든 '설'(說)들은 제쳐두고서 그의 연주 그 자체만 보았을땐 가파르고 높은 산을 힘겹게 올라갔다가 끝내 정상에 오를때 환희를 함뿍 느껴주게 하듯, 뭔가 힘겨운듯 질질, 느릿느릿 끌다가 클라이막스에 가서 '터뜨리는' 멋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유명했으며, 그 깊은 종교성과 신앙심을 작품에 고스란히 옮긴 브루크너(Anton Bruckner)의 작품 연주에 탁월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연주를 들어보면 다른 지휘자들과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곧장 알 수 있다. 그런데 나는 틴트너의 브루크너 교향곡 11곡 전집이 있고, 아바도의 브루크너 교향곡 박스 세트, 기타 브루크너의 작품을 연주한 CD들을 모두 소장하고 있음에도 첼리비다케가 연주한 브루크너 음반 하나 구입하지 않았다니, 이제와서 새삼 얼떨떨해진다.

브루크너는 모테트, 미사곡등과 더불어 자신의 독실한 신앙심을 음악에 녹여내었다보니 첼리비다케의 느린 연주와 어우러지면 정말로 명상이나 기도를 하는듯한 기분에 빠지게 된다. 천천히 산을 오르듯, 그러나 약간 숨차는 듯 연주하는 것을 이겨내고나면 끝내 정상에 다다라 웅장한 총주가 그곳에서 듣는이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르가니스트였던 브루크너는 오르간 소리를 오케스트라에 그대로 이식하고자 금관악기 사용에 상당한 고심을 들인 바 있는데, 금관악기는 특성상 실수 한번 잘못나면 그 '삑사리'가 쉽게 티나게 된다. 여러 성부를 한 악기 혹은 여러 금관악기들이 각자 다른 선율을 연주하며 파이프오르간 소리를 모방하려 들때, 첼리비다케의 눈빛은 날카로워진다. 그에게 느린 연주는 '기본'이요, 정확한 연주는 '기초'다.


- 시험공부하기 싫어서 첼리비다케의 브루크너 교향곡 4번 "Romantische"(낭만적) 듣다가 쓴 글. 2016. 6. 11.
2016. 6. 13. 수정
2016. 10. 20. 수정
2017. 5. 27. 수정





첼리비다케의 뮌헨필하모닉 상임지휘자 시절,
교향곡 4번 "낭만적"(Romantic, Romantische) 연주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