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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목소리 星の声

요절한 천재, 귀도 칸텔리 Guido Cantelli

by Fred.Park 2015. 6. 20.


Guido Cantelli (1920~1956)

시인 기형도는 나이 서른에 저승으로 갔다. 윤동주는 서른해도 넘기지 못하고 이승을 떠났다. 불세출의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 역시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존 레논은 딱 40세의 나이로 마크 채프먼의 총으로 고인이 되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주변을 놀라게 만든 사람들이었다. 역사속의 천재들.

"천재는 요절한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법칙이 아니다. 어느 권위있는 학자의 어록도 아니다. 성서나 꾸란, 유교의 경전에 있는 말도 아니다. 그냥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제 명을 다 하지 못하고 이승을 떠나는 것을 두고 만들어진 문장일 뿐이다.

클래식 음악 관련 인물들 중에서도 요절한 사람은 많다. 슈베르트는 31세의 나이로 이승을 떠났다. 모차르트 역시 40세를 넘기지 못하고 저승으로 떠나고 말았다. 말러는 한창 지휘자로서, 작곡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해야 할 50세의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이들 역시 서양음악사상 수많은 음악가들이 있었다지만 그 중에서도 유달리 빼어난 음악으로 주위를 놀라게 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작품은 또한 오늘날에도 널리 연주되고 있다. 말 그대로의 '천재'들이다. 

천재. 사전적 의미만 따지고 보면 '하늘이 내린 인재'란 의미이다. 보통 사람은 쉽게 천재들이 가진 능력에 닿을 수 없음을 뜻한다. '하늘'이 내려준 재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천재들은 일찍 죽는다? 하느님은 자기가 내어준 능력으로 자신의 피조물들이 놀라는 것이 못마땅했나보다.

이번엔,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정말 뛰어난 능력을 가진, 그러나 30대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천재 지휘자 한명을 소개하려 한다. 이탈리아 출신의 천재 지휘자 귀도 칸텔리(Guido Cantelli)다. 그는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임에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고, 빌헬름 푸르트뱅글러(Wilhelm Furtwängler),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에 이어 베를린 필의 지휘자로 거론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음악가였다. 무엇보다도 세계 최고의 지휘자를 꼽으라면 어느 누구도 이견을 제기하지 않을 사람. 전설적인 마에스트로인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까지 그의 재능을 '대놓고' 칭찬할 정도였다. 토스카니니는 화끈하고 깐깐한 성격으로 마음에 드는 음악이 나오기 까지 단원들을 수도 없이 들들 볶는 성격임을 감안할때 그의 능력이 어느정도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시간낭비일지도 모른다.

그는 아쉽게도 36세의 나이에 목숨을 잃는다. 그가 목숨을 잃기 전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 후보로 유력했던 것을 감안했을때 그가 계속 살아있었다면 카라얀은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에 오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카라얀이 30년 이상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로서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역사를 바꿔놓은 것을 생각한다면 귀도 칸텔리 역시 그러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물론 지나간 일에 'if'란 있을 수는 없지만 칸텔리는 그정도로 실력을 인정받는 음악가였다.

귀도 칸텔리는 1920년 이탈리아 피에몬테주 노바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노바라 마을의 군악대장이었다. 어려서부터 칸텔리는 피아노를 배웠고, 14세의 나이에 공개연주회를 가졌을만큼 재능을 일찌감치 인정받았다. 밀라노 음악원에 입학하여 피아노와 지휘법을 공부하였고, 당시 최고의 오페라 지휘자였던 안토니오 보또(Antonio Votto)를 스승으로 맞이한다. 보또의 정성어린 지도를 통해 실력파 지휘자로 성장한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로 취임하였고 베르디의 작품을 성공적으로 지휘하였다. 

세계2차대전 발발 이후 그는 군대에 입대하였고 전쟁이 끝난 뒤 오페라 지휘자로 복귀한다. 이때 그의 공연을 관람했던 토스카니니는 귀도 칸텔리를 칭찬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건 마치 내가 지휘한 것 같았다." 음악에 있어서 깐깐하기로 소문난 토스카니니에게 인정을 받은 칸텔리. 그는 일약 세계의 주목을 받는 실력파 지휘자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후 토스카니니가 미국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맡게 되며 칸텔리를 미국으로 초청하였다. 칸텔리는 NBC 심포니의 객원지휘자로 취임하였고 토스카니니를 평생의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 최고와 최고의 만남이었다. 

칸텔리는 NBC 심포니 이외에도 보스턴, 시카고, 필라델피아의 주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고, 30대 초반의 나이에 뉴욕필을 지휘하기에 이른다. 현장 연주 뿐 아니라 EMI(당시 HMV)와 계약하여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최고의 음반들을 녹음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음반들은 '명반'의 반열에 올라 오늘날 까지도 사랑받기에 이른다.

1956년, 칸텔리는 밀라노의 라 스칼라(La Scala)에서 모차르트의 <여자는 다 그래>를 지휘하여 성공을 거둔다. 자국의 실력파 신인 지휘자를 미국에 빼앗기는 것이 못마땅했던 라 스칼라는 곧바로 라 스칼라의 음악감독직을 칸텔리에게 제의한다. 칸텔리의 나이 36세 때이다. 그의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라 스칼라는 오늘날에도 세계 최고의 오페라극장으로 유명하며, 그런 곳의 음악감독이 된다는 것은 곧 세계 최고의 반열에 들었음을 의미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늘은 그의 미친 재능을 질투했는지 칸텔리는 라 스칼라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된 후 불과 일주일 만에 비행기 사고로 운명하게 만든다. 칸텔리는 라 스칼라에서 브람스 교향곡 1번 등을 연주한 뒤 뉴욕 필과의 공연을 위해 아내와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이 공연은 그의 인생 마지막 연주회가 되었다. 비행기는 로마에서 출발하여 파리를 거쳐 뉴욕으로 갈 예정이었으나 파리에서 이륙에 실패하여 추락한다. 세계 최고의 음악가가 제자로 받아들였던 또 하나의 세계 최고의 음악가가 비극으로, 그것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칸텔리가 1920년생임을 감안했을때 그가 비극적인 사고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꽤 최근까지 생존하여 훌륭한 음악을 남길수 있지 않았을까. 이미 지나간 일에 아무리 if절을 들이댄다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찍 유명을 달리한 천재 음악가들을 보면 아쉬움이 사무치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그가 오랫동안 살았더라면... 아쉬움만 남는다.

칸텔리의 음악을 처음 접한 것은 얼마전 인터넷 서핑도중 우연히 다운받은 멘델스존 교향곡 4번과 브람스 교향곡 3번의 커플링된 음반이었다. 지휘자는 Guido Cantelli...? 난생 처음보는 지휘자였다. 그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기 이전에 우선 '그냥' 들어보기로 하였다.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놀라움을 억누를 수 없었다. 지금까지 듣던 멘델스존 교향곡 4번 <이탈리아>들 중에서 가장 '생기있는' 연주였기 때문이다. 브람스 교향곡 3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젊은 지휘자의 '패기'만이 앞서지 않았다. 그의 해석은 나이 지긋하고 인생의 깊이를 아는 지휘자처럼 '깊이' 있는 해석이었다. 거기에 젊은이의 '생기'까지 얹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음반으로 나는 칸텔리의 빠돌이가 되었다.

멘델스존 교향곡 4번 <이탈리아>는 이탈리아를 여행했던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Bartholdy)이 그때 느꼈던 감상을 바탕으로 작곡한 교향곡이다. 1악장 Allegro Vivace는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에서도 중간중간 삽입되기도 했고, 기타 방송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부분이기에 이 곡의 작곡가와 제목을 모를 수는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봤을만한 작품이다. 누군가 나에게 멘델스존 교향곡 4번 1악장을 '빠르고 생기있게'(Allegro Vivace) 연주하라는 작곡가 지시를 가장 충실하게 따른 연주는 누구의 것인가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칸텔리의 연주를 꼽을 것이다. 

멘델스존 교향곡 4번 <이탈리아>중 1악장은 뜨거운 지중해의 태양이 내리쬐는 이탈리아의 생기있는 풍경을 음악으로 섬세하게 그려내야 한다. 칸텔리는 이 작품을 녹음하면서 자신의 고향을 떠올리며 연주하지 않았을까. 칸텔리라면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이고 그랬을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가 남긴 바로 이 명반을 들으며 글을 쓰다보니 그의 이른 죽음이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멘델스존 교향곡 4번과 브람스 교향곡 3번의 커플링 음반은 절판된 줄 알았는데 아직 칸텔리의 음반이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다운로드한 음원을 가지고 있지만 충분함 그 이상의 소장가치가 있는 음반이기에 글을 마치자마자 바로 구입해야 하겠다.




칸텔리가 지휘한 멘델스존의 교향곡 4번, <이탈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