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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목소리 星の声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 이야기 - "내가 말러의 음악에 빠져들게 된 것은..."

by Fred.Park 2014. 7. 8.



Gustav Mahler (1860-1911)



2014년 7월 7일은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er, 1860년 7월 7일 - 1911년 5월 18일)의 탄생 154주년이 되는 날이다. 말러에 관한 자세한 바이오그라피는 인터넷 또는 서적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으므로[각주:1] 굳이 내가 말러에 관하여 미주알 고주알 글로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나름대로 오랫동안 고전 음악을 접하고 즐겨왔음에도 말러의 음악을 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에, 여기서는 내가 어떻게 말러의 음악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이 지면을 통해 말하고 싶다.

당대의 작곡가들 중 가장 위대한 사람을 꼽으라면 말러의 이름은 항상 들어가 있으며, 말러와 동시대 인물이자 스승이었던 안톤 브루크너[각주:2](Anton Bruckner, 1824-1896), 그리고 말러와 브루크너가 모두 존경했던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 역시 위대한 작곡가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고전적인 작곡 형식에서 조금씩 혹은 매우 먼 거리를 달려와 벗어난 작곡가라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말러는 '음악의 철인(哲人)'이라 불리울 정도로 자신의 음악속에 단순한 감정을 녹이는 것을 넘어 '철학'을 이식하였다. 그가 남긴 어록중 가장 유명한 말이 있으니,

"The symphony must be like the world, it must embrace everything."
(교향곡이란 세계와 같아야 한다. 모든것을 품어야만 한다.)



말러의 작품 중에는 피아노 콰르텟(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로 구성된 연주곡) A단조와 몇몇 가곡들이 있으나 그의 작품들 중 오늘날까지도 열렬한 호응을 받고 있는 작품들은 바로 '교향곡'들이다. 나 역시도 말러를 처음으로 알게된 것이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한 교향곡 8번 '천인 교향곡'(The Symphony of a thousand)[각주:3]을 듣고 나서였다. 최근엔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던 도중 구스타보 두다멜(Gustavo Dudamel)이 카라카스에서 연주한 천인교향곡 1부 영상을 유튜브에서 보게 되었는데, 가톨릭 성가인 '오소서 창조주 성령이시여'(Veni Creator Spiritus)로 시작되는 장대한 규모의 연주가 일순간 내 머리를 강타했다. 무대 위에 오른 사람은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그리고 합창단, 독창 가수까지 모두 1300명 정도가 된다는 기록을 보고 난 이후의 충격은 더했다.




말이 필요없다. 들어보면 안다. (구스타보 두다멜의 말러 교향곡 8번, 1부)


속된말로 단순한 '물량빨'이 아니었다. 단지 사람을 많이 사용해서 연주하는 곡이라면 이미 유튜브에서 약 20000명의 사람들이 베토벤 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를 부르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으니 말이다. 내가 이 곡에 빠져든 결정적 이유는 가사와 선율이 정교하게 맞아 떨어지는 구성과 그를 통해 보여주는 신에 대한 찬미, 그리고 2부 마지막에서 영원한 성모에 대한 찬사와 사랑이 나에게도 큰 기쁨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러는 단순히 창조주와 성모에 대한 찬양만을 이 노래에 녹이지 않았다. 말러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혹은 더 나아가 말러를 '숭배'하는 사람이라면 알다시피 교향곡 8번은 말러의 아내 알마 말러(Alma Mahler, 결혼 전 성姓은 Schindler)에게 바치는 엄청난 사랑의 고백이다. "내 아내 알마에게 이 곡을 헌정한다."라 스스로 밝혔을 정도로 말러는 이 곡에 엄청난 영혼을 쏟아부었음을 시인한다.[각주:4] 그렇다. 결정적으로 말러의 음악에 빠진 이유, '너무나도 솔직해서'이다. 다른 작곡가들이 그렇다고 자신의 감정을 속여가면서 작곡했다는건 아니다. 그러나 말러는 특별하다.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다.

이처럼 절제를 위한 절제, 형식을 위한 형식에 얽메이지 않고 자신의 삶과 철학을 있는 그대로 음악속에 녹여내는 말러라는 작곡가에 나는 한순간에 빠져들게 되었다. 격정적인 감정도, 차분한 상태의 마음도, 아내를 향한 사랑의 고백도, 자신의 딸에게 보내는 사랑도 모든것을 음악속에 녹여내고 또 그것을 통해 어떤 감동적인 '소리'를 만들어낼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그에게 나는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당시엔 지휘자로서는 엄청난 영예를 안았지만 작곡가이자 창작자로서는 크게 인정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는 "언젠가 나의 시대가 올 것!"이라 자신있게 말했고, 그것은 오늘날 현실이 되어 전 세계의 수많은 말러 숭배자들을 만들게 되었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지금도 이어폰으로 말러 교향곡 8번 2부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위대한 인물이자 마에스트로, 구스타프 말러에 대해서는 앞으로 많은 글을 쏟아낼 수도 있다. 다만 지금은 다시 한번 말러의 탄신을 축하하며, 또 하늘에 있는 말러에게 '당신의 음악에 감사한다'는 마음을 전하며 이 졸필拙筆의 마지막 온점을 찍고자 한다.






  1. 낙소스(Naxos)에서 책으로 발간한 <말러, 그의 음악과 삶> 또는 동료이자 열렬한 지지자였던 지휘자 브루노 발터의 <구스타프 말러>를 읽어보면 예술가로서의 말러, 인간으로서의 말러를 쉽게 알 수 있다. [본문으로]
  2. 사실 말러가 남긴 글을 보면 말러는 브루크너를 '스승'이라기 보다는 (실제 말러는 브루크너의 작곡 수업을 들은 적이 있긴 하지만) '동료'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브루크너는 생각보다 여리고 소심한 성품으로 유명했으며, 중년이 되어서도 어린 소녀들에게 연정을 품었을 정도로 자신의 정신연령은 항상 소년기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이러한 성향이 브루크너의 작품에 그대로 녹아내려졌으니 다행이지, 브루크너가 예술가가 아니었다면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본문으로]
  3. 말러가 교향곡 8번을 초연할때 지휘자, 악기 연주자, 합창단까지 총 1000명이 넘는 인원이 무대 위에 올라갔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말러 스스로가 이 별명을 붙이지는 않았다. 오늘날에는 음향장비와 시설의 발달 등으로 굳이 1000명이 넘는 인원을 무대에 올릴 필요가 없어졌기에 300~500명 정도로 연주한다. 다만 얼마전 젊은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Gustavo Dudamel)이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1300명이 넘는 인원을 무대에 올려 말러 교향곡 8번을 연주했던 기록이 있다. 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본문으로]
  4. 말러는 작곡가로서는 그 당시엔 크게 인정받지는 못했으나, 지휘자로는 엄청난 영예를 얻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지휘자보다는 끊임없이 작곡가이자 창작자로 입신하고 싶어했고, 그런 그를 사랑해주었던 알마는 그에겐 엄청난 구세주였다. 하지만 거짓말같이 8번 교향곡을 작곡한 직후 알마는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게 되어 말러를 상심하게 한다. 파국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