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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 幻の光

홍상수, <강원도의 힘>

by Fred.Park 2024. 4. 21.

홍상수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작품, <강원도의 힘>

 

"조금만 더 긴호흡으로 기다리자.", 상권이 지숙에게 남긴 메모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강원도의 힘>의 어느 장면,

상권(백종학 분)이 지숙(오윤홍 분)의 집 앞에 남기고 간 낙서, 아니 메모다.
내가 조금 더 너를 안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을 때 까지 기다려달란 의미겠지만, 지숙은 이 메모를 지워버린다.

지숙은 목욕탕에서 몸무게를 잰다. 상당히 '적은' 몸무게다. 아마도 낙태를 하고 난 후 줄어든 몸무게를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상권은 어느 절에서 기왓장에 쓰여진 "어머니 건강하세요 - 지숙"을 보고 멈칫 한다. 이미 결혼하고 아이가 있는 유부남이지만 사실은 지숙과의 결혼을 진정으로 꿈꿨을지도 모른다.

지숙은 잊어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만, 상권과 비슷한 남자에게 끌린다. 강원도에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정말이지 누가 봐도 서럽게 운다.

상권은 결국 대학 교수에 임용되는데 성공하여, 어찌되었건 '안정적'인 사회인으로 한발짝 더 올라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숙을 사랑할 수 없다. 사랑하지만 멀어져야 하는, 잊을 수 밖에 없는 처지의 두 사람. 지숙에게 안기는 상권. 그런 상권을 떼어놓으려 하며 지숙이 말한다. "나도 좀 살아야 되겠어요."

사실상의 마지막 대사. 지숙의 "나도 좀 살아야 되겠어요."는 또 마지막 상권이 혼자 남은 금붕어 한 마리를 빤히 바라보는 장면과 겹쳐 머리를 계속 흔든다.

그밖에 할 말이 많은 명작 영화. 단순히 '야한 영화'로 치부하기엔 꽤 들여다볼 구석이 많고, 상상을 넣어 더 재밌게 볼 구석도 많은 영화. 홍상수 감독에 대한 호불호가 확실히 한국 영화 팬들 내에서 갈림은 나도 잘 안다만, 명작을 명작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무어라 불러야 하겠는가.

그리고 또 궁금해진다. <강원도의 힘>에서, 그 '힘'은 무엇일까?
파워, 완력, 근육질, 파괴력. 할때 쓰는 그런 힘은 아닐것 같다.
그럼 뭐지...?

아무튼 오늘, 집에서 쉬면서 보고싶었던 영화들 하나하나 또 보고 책도 또 본다. 조금 아까 <백 엔의 사랑>,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이어 <강원도의 힘>을 또 보았다. 그렇게 오전부터 시간을 보내고나니 벌써 15시 반 정도가 되었다. 결코 헛된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024. 4.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