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글래디에이터 2>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
이 영화에서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더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꼭 우리나라,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가 마주한 정치의 위기랄까... '차분함'과 '지성'은 사라지거나 쉬이 백안시된다. 오직 폭력적 언어와 행동만이 환영받는다. 공동체에 대한 깊은 애정과 미래에 대한 고민의 정치보다는 지금 당장의 문제만을 회피해보겠다는 임기응변식 정치만 남았다. 이러한 분위기에 대한 자성을 촉구하고 경고하는 모습이, 살짝 느껴졌달까.
영화 속 로마의 모습은 일견 화려해보이지만, 걸인들과 낭인들이 넘쳐난다. 그나마 전작엔 '영광스러운 로마제국'의 모습이 잘 보였다면, (물론 글래디에이터 전작의 감독판, 확장판의 삭제된 씬 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는 있다지만,) 이번 글래디에이터 2에서는 로마제국의 어둡고 더럽고 냄새나고 추한 모습만이 보여진다. 시선을 노예 검투사들과 로마 군인들과 귀족들이 아닌 다른 쪽으로 옮겨보면 영광의 로마가 아닌 죽어가는 로마를 쉽게 볼 수 있다.
다음은 황제에 대한 이야기다. 전작의 콤모두스는 그나마 '황제다움'이 없진 않았다면, 이번 후속작의 형제 공동 황제 카라칼라와 게타는 '황제다움'따윈 애진작에 찢어버린 이들로 비추어진다. 그러다 그 중 하나는 목이 달아나 죽고, 또 다른 하나는 콜로세움에서 귀가 뚫려 죽고 만다. 한 녀석은 머리가 있으나 생각하기를 포기한 인간 이하의 존재이니 머리를 잘라버렸을지도 모르고, 그나마 남은 한 녀석은 있는 귀로도 민중의 분노를 들을줄 모르니 귀가 뚫려 죽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이들을 둘러싼 원로원 의원들의 모습에서도 역시 정치를 한다는, 어느 국가를 이끈다는 위엄이나 품위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전작과 후속작 모두에 등장한 그라쿠스 의원이 원로원의 마지막 품위를 상징하는 인물이었을지 모르나, 반역자로 몰려 콜로세움에서 공개처형당한다. 정치를 정치답게 하려던 인물들은 공개처형당하고 원숭이 집정관과 황제를 등에 업은 권신 집정관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든 대다수의 원로원 의원들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정치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면 이것은 나의 정치에 대한 과몰입 때문일까?
20여년만에 돌아와 로마의 꿈, 공화정을 다시 일으켜세우겠다는 후속작 주인공인 루시우스도 결국 마지막엔 아버지 막시무스가 20년 전 쓰러져 죽은 콜로세움에서 "아버지, 나를 도와주십시오."라며 기도하듯 읊조린다. 그 과정에서 20년만에 다시 만난 어머니 루실라 공주는 누미디아에서 만난 자신의 아내와 같이 가슴에 화살을 맞고 사망한다. 20년 전 콜로세움에서 죽음을 맞은 아버지 막시무스와 달리 루시우스는 영화 끝까지 살아는 남지만, 그동안 죽을 힘을 다해 싸우던 모습과 달리 엔딩에선 갑자기 힘을 잃은 모습을 보인다. 서늘함 마저 느껴졌다.
상업영화를 너무 다큐멘터리 보듯 한 것 아니냐 할 수 있다. 어쩌겠는가. 내 눈과 머리에 그렇게 보이고 읽혀진것을.
목이 달아나고 귀가 뚫린 미친 형제 황제의 모습에서, 특히나 어떤 두 사람이 생각나는것 역시도. 한쪽은 형제라는 점과, 다른 한쪽은 부부라는 점이 그나마 다른 점이랄까.
202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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