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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世の中

[부천뉴스 칼럼] '일도쾌차一到快差'는 없다.

by 이웃집박선생 2024. 9. 9.

한의사로 일한지 십여 년이 되어간다. 나름대로 좋은 수능 성적 받고 한의과대학에 입학하였고, 졸업을 하였다. 그리고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하여 면허를 받았을 때의 그 마음을 최근 들어, 나는 다시 생각하게 된다. 면허를 받았다는 것은 이제 '학생'이 아닌 정식으로 '사'자를 달았음을 의미한다.

이때의 마음, 즉 초심(初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금언(金言)이지만, 이게 막상 실제 생활에서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마도 예수와 공자, 소크라테스와 석가모니가 현세에 다시 나타나 살더라도 불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한의사로서의 나의 첫 마음은 모두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그런 이웃집 선생이 되자는 것이었다.

한의사로서 일하다 보면, 진료실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기본적으로 나를 찾는 사람들은 '환자', 즉 '아픈 사람들'이다. 당장 나의 동생들도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고 자랐음에도 결국은 나와 동생은 모두 별개의 인격체이다. 하물며 부모 형제와도 언제나 서로의 '다름'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사는 마당에 생판 모르는 남이고 '환자'라면 오죽할까. 솔직히 말해 그 때문에 매일 매일이 전쟁이고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내가 일을 스스로 그만두지 않는 한 절대로 끊이지 않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주어진 일을 거부할 수 없다. 그래도 아직은 잊지 않고 간직한 첫 마음과 사명감 때문이다. 그리고 지엄한 대한민국 <의료법>에서도 정당한 사유없이 환자의 진료 요청을 뿌리쳐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렇게 환자를 대하다 보면, 어떤 사람은 이왕지사 '온 김에' 몸에 있는 이 곳 저 곳을 한꺼번에 치료해달라 요청하기도 한다.

마음으로는 나 역시도 한약 처방 한두 첩에, 침 치료 한두 번에 모든 병이 ‘일도쾌차’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니, 정말로 그렇게 되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그런 기적은 일어날 수 없다. 결국 어떤 원인에 의해 발생한 질병인지를 차분하게 따지고 들어가며, 그 때 그 때마다의 대증치료를 할 것인지 근본적인 치료를 할 것인지를 환자에게 설명하고, 함께 결정한 뒤 완치를 향해 걸어가야 한다.

'인지상정'이란 말이 있다. 사람이라면 보통은 그렇게 가질 만한 감정이나 생각을 의미한다. '환자'라면 누가 봐도 중한 상태의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내 손에 박힌 가시 하나가 더욱 큰 일로 느껴지게 마련이다. 진료실을 찾아 '온 김에' 모든 아픈 것을 다 해결하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게 바로 환자로서의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일도쾌차’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설득하는데 이따금씩 나는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여러 가지 건강상 문제를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하나 하나 차분히 치료해야 제대로 치료 효과를 누릴 수 있음을 '온 김에', '모두 다' 해결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급하신' 환자분들께 차분히 설득한다.

최근 이 나라의 '최고'에 있는 분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보면 그런 환자를 마주한 기분이 든다. 헌법상 명문화된 '최고'의 권한은 말 그대로 글로 그렇게 쓰여져 있을 뿐, 언제 어디서든 마음껏 휘둘러도 되는 전가의 보도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분은 국민들이 공감하지 않는 부분에서 조차 헌법상 보장된 '최고'의 권한을 한꺼번에 휘두르면 모든 사회 문제 등이 ‘일도쾌차’될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 듯하다.

필부들이 병원을 찾아 아프다, 한꺼번에 다 고쳐달라 요구하는 모습에 대해 인지상정을 이야기할 수 있겠으나, 권력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함부로 인지상정을 이야기해서는 아니된다. 우리 현실에서 질병의 ‘일도쾌차’란 있을 수 없듯, 사회 문제의 ‘일도쾌차’ 역시 있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최고 위치'의 그분을 누군가가 설득해야만 할 것이다.

만약 그럼에도 그분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방식으로 국민들이 극약 처방을 내릴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이미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불과 몇 년 전, 큰 부작용을 감수하고 극약 처방을 내려본 경험이 있다. 큰 부작용을 감수한다는 것은, 곧 ‘일도쾌차’란 있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렇다. 다시 말하지만 ‘일도쾌차란 없다.’

2024. 9. 9.

 

세상 어느 곳에도 '일도쾌차란 없다.’

한의사로 일한 것이 십여 년이 되어간다. 나름대로 좋은 수능 성적 받고 한의과대학에 입학하였고, 졸업을 하였다. 그리고 최근 나는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하여 면허를 받았을 때의 그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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