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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世の中

[부천뉴스 칼럼] 일만 하다 죽는 대한민국

by 이웃집박선생 2024.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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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협력개발기구, 즉 OECD 회원국들 중 우리 대한민국은 중남미 국가를 제외하고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이다. 대한민국은 콜롬비아, 멕시코, 코스타리카, 칠레, 이스라엘 등 5개국과 함께 연간 1인당 근로시간이 가장 긴 나라로 잘 알려져 있으며, 2023년 4월을 기준으로 세계 4위를 기록한 바 있다.

우리 한국인들의 근면 성실함은 지난 역사 속에서 명백히 입증된 바 있다. 덕분에 미국을 비롯한 세계 어디서도 한인 커뮤니티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질 수 있게 되었고, 세계 어디서든 한국인으로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부유함과 높은 지위를 누리는 교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분명 우리 한국인들 특유의 근면 성실함으로 이루고 얻어낸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잠시 멈춰 생각해봐야 할 지점에 왔다. 일을 많이, 그리고 길게 하는 것이 반드시 높은 생산성으로 귀결되는지에 관해서이다. 일을 많이, 그리고 길게 하는 것이 언제나 옳은 행동인지에 대해서이다.

일을 길게, 그리고 많이 한다는 것이 곧 높은 생산성과 직결되지 않는 세상이 왔다. 근육과 힘줄, 그리고 인대와 뼈의 힘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을 해야만 했던 과거와 지금은 분명 다르다. 여전히 1차, 2차 산업은 우리 인류의 삶에 가장 기초가 되어주기는 하나, 3차를 넘어 4차 산업혁명을 지낸 오늘날, 노동시간이 길다는 것과 생산성엔 반드시 정비례 관계, 더 나아가 딱 떨어지는 상관관계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극단적이긴 하나, 예를 하나 들어보자. 9시에 정확히 출근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딱 해낸 뒤 18시에 칼같이 집으로 가는 사람 '갑'과, 충분히 근무시간 중에 일 처리를 할 수 있음에도 질질 끌다가 야근을 하여 21시에 퇴근하는 같은 회사의 '을', 이렇게 두 사람이 있다고 치자.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을'이 더욱 성실한 사회인이라 여기곤 한다. 이유는 단 하나. '갑'은 무엄하게도 '감히' 칼퇴(퇴근시간을 칼같이 지켜 퇴근하는 것)를 하는 못된 사람이고, '을'은 어찌되었든 회사에 오래 남아 '야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긴 노동시간에 시달리면, 우리 같은 보건의료인들 역시 그에 따라 노동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언제부터인가 공휴일에도 진료를 보거나, 평일 야간까지 진료를 보는 의료기관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부천을 비롯한 수도권 도시 지역의 의료기관끼리의 경쟁 때문에도 그렇지만, 이는 의료기관을 찾는 환자들부터가 아플 때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에 매달렸다가 퇴근하고 나서야 야간에 진료실을 찾거나, 휴일에 몰아서 진료를 보는 일이 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명 의료기관 특성상, 한시가 급한 환자에 대해서 빠르고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 항시 대기상태에 있어야 할 수도 있겠으나, 의료기관을 운영하거나 그 안에서 근무하는 보건의료인들 역시도 평범한 사람이기에 적절한 '쉼'이 있어야 계속 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함께 야근을 하고, 함께 공휴일에도 근무를 한다. 휴식다운 휴식을 찾기도 전에 바로 다음 출근을 준비해야만 한다. 이처럼 서로가 결국 일만 하다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는 일이 끝도 없이 반복되는 사회에서 삶의 어떤 즐거움을 찾을 것이며, 또 어떤 행복이 있을 것일지 가늠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노동 없이 살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동만으로 사람이 살아갈 수도 없는 법이다.

이제, 우리는 잠시 멈춰서서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긴 노동시간과 생산성의 진정한 상관관계. 더 나아가 게을러도 될 때 게을러질 수 있는 법. 아프면 지체없이 적절한 치료를 받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생활. 노동과 생활의 균형 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언제까지 젊어서 노후 대비를 위해 죽도록 일만 하다가, 늙어서는 병원비에 모아둔 재산을 탕진하고 결국 병원에 돈을 써가며 죽는 천편일률적인 삶만 살다가 이 세상을 등지려 하는 것일까? 몇해 전,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수상한 수학자 허준이 교수의 서울대학교 졸업식 축사의 일부를 인용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일만 하다 죽는 대한민국

박홍찬 한의사 세계경제협력개발기구, 즉 OECD 회원국들 중 우리 대한민국은 중남미 국가를 제외하고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이다. 대한민국은 콜롬비아, 멕시코, 코스타리카, 칠레,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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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