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 이성계는 조선 왕조를 건국한다. 이전 왕조인 고려를 계승한 조선은, 지금의 서울인 한양을 도읍으로 결정하게 된다. 조선 왕조 극초기엔 이전 고려의 수도 개경(지금의 개성)을 임시 수도로 활용하였으나, 이내 지금의 서울로 천도한다.
조선 왕조는 철저한 유교 정신에 입각하여 세워진 국가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유교 정신의 핵심 가르침 중, '사람이 마땅히 갖추고 행해야 할 5가지 덕목'을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으로 정하였고, 조선 왕조는 특별히 이 다섯 가지 덕목을 수도 한양의 지명 또는 건축물의 이름 속에 담아내어 왕조의 통치 철학을 널리 알리고, 수도로서의 위상을 제고하려 하였다. 그리고 이 노력들은 지금도 서울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으며, 누구든지 쉽게 찾을 수 있다.
자세히 알아보자. 우선 조선 왕조의 정궁(正宮)인 경복궁과 그의 정문인 광화문(光化門)을 중심으로 지금은 망실된 서대문인 돈의문(敦義門)이 있고, 동대문인 흥인지문(興仁之門), 남대문으로는 숭례문(崇禮門)이 있다. 여기엔 각각 유교 정신의 다섯가지 덕목들 중, '의'(義), '인'(仁), '예'(禮)가 들어가있다.
북쪽은 북악산으로 막혀있기에 큰 성문을 짓기 어려워 관용적으로도 북대문이라 표현하지 않으나, 한양 도성의 또 다른 관문이자 북한산성, 탕춘대성을 연결하는 홍지문(弘智門)이 있어 한양 도성에 '지'(智)의 정신을 담았다는 것을 다른 성문들의 이름을 따라 추론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어서 유교 정신의 핵심 덕목 다섯가지 중, 남은 하나는 바로 '신'(信)이다. 한양 도성의 안팎을 오고가는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엔 '믿음'이란 의미를 가진 문은 없다. 그렇다면 '신'(信)은 한양 도성 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정답을 이야기 하기 이전, 약간의 힌트를 내어보려 한다. 우리가 매번 연말연시를 맞이할 때마다 듣게되는 종소리에 힌트가 있다. 그렇다. 그 종이 걸려있는 곳의 이름은 바로 보신각(普信閣)이다. 여기에 바로 '신'(信)이란 이름과 그 정신이 담겨있다.
보신각에 걸린 종(鐘)이 바로 '종로'(鍾路)라는 이름의 기원이다. 또한 이곳이 바로 수도 한양에서 전국 사통팔달로의 관문이자 정중앙이다. 인의예지를 각 사방에 배치한 뒤, 마지막으로 '신'(信)을 보신각(普信閣)으로서 한양 도성 정중앙에 두었던 조선 왕조의 철학적 의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신'(信)이라는 것은 '믿음', '약속을 지키는 것', 더 나아가 '타인에게 믿음을 주는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의미한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다른 무엇보다도 '신'(信)의 정신이 깃든 보신각(普信閣)을 한양 도성 정 중앙에 두었던 조선 왕조의 철학적 의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2024. 8. 26.
'세상에서 世の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천뉴스 칼럼] 달나라에서 온 윤석열 정부 (3) | 2024.09.23 |
---|---|
[부천뉴스 칼럼] '일도쾌차一到快差'는 없다. (2) | 2024.09.09 |
[부천뉴스 칼럼] 지금은 복습이 필요한 때 (0) | 2024.08.14 |
日常遺憾 (0) | 2024.08.07 |
응원하고픈 언론인이 생겼어. (0) | 2024.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