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 맨 마지막, 출판사 사장(권해효 분)은 여주인공(김민희 분)에게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책을 선물로 준다. 아마도 영화와 같은 제목의 <그 후>라는 소설책일듯 싶다. 아직 내가 나쓰메 소세키의 그 책을 읽어보지 못해서, 이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풀어내긴 어렵다. 하지만 홍상수 영화가 늘상 그러하듯, 소설책의 내용과 영화의 내용은 긴밀한 관계를 갖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냥 '영화적 장치'의 하나 정도일듯.
2. 아마 '그 후'라는건, '바람을 피운 후'를 의미하는건지 모르겠다. 여튼 주인공 출판사 사장은 출판사 직원과 바람을 피우는 사이가 맞다. 그 와중에 사장 아내는 또 다른 출판사에 들어온 직원(김민희)을 상간녀로 오해하여 손찌검을 하고 욕설을 퍼붓는다.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 자신이 믿고있는 것을 그대로 믿으며 상대를 저주하고 욕설을 퍼붓는다. 재미난 것은, 그 상대(자신의 남편, 출판사 사장)가 바람을 피운 그 자체는 맞긴 맞는데, '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냥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이 년이 바로 내 남편에게 꼬리친 '썅년'이니까.
3. 그런데 분노에 가득 찬 여자 배우, 조윤희씨 말이다. 실제 권해효 배우의 아내다. 그래서 더 연기가 연기같이 느껴지지 않고 서슬퍼렇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 확실히 프로들은 다르구나. 그리고 '진짜 부부'가 부부 연기를 하면서, 그것도 불륜을 저지른 남편과 상간녀(로 오해하고 있는 사람)를(을) 손찌검하면서 보이는 그 미친 연기란...
4. 아무튼 영화 제목 '그 후'라는건, 바람피우고 난 소위 현자타임을 말하는 것인지... 어찌됐건, 이 감독양반과 그의 영화는 무엇으로 딱 부러지고 잘라지도록 '정의되는 것'을 거부하고 언제나 해체하고 저항하는 예술가이자 그 영화이니 그냥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믿겨지는 대로 믿으면 그만일지 모른다. 어찌되었든 흑백영화이지만, 택시에서 혼자 책을 바라보고 택시기사(목소리만 출연한다. 기주봉 배우이다.)와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얼굴에 비춰지는 빛과 그림자가 꽤나 아름다웠다. 출판사 사장과의 술잔을 놓고 나누는 대화에서 자긴 '신'을 믿는다 하며, 끄트머리 택시 씬에서 "그대로 되게 해주세요."기도하는 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지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살짝 귀여운 모습이 보여서 또 여기서 피식 웃게 된다.
5. 일단 잘 모르겠고, 나도 기도나 해보자. "그대로 되게 해주세요."
2024. 0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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