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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 幻の光

홍상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by 이웃집박선생 2024. 5. 14.

이 영화를 기점으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 스타일이 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홍상수 영화를 평론하는 이들이 자주 입에, 그리고 글에 올리는 키워드들이 있다. 반복과 차이, 변주, 지식인의 허영을 풍자한다 만다는 등. 여러가지 담론들은 이미 수도 없이 생산되어 왔다. 이 영화에서도 예외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조금 다른 토핑을 얹고 싶어졌다. 사실, 이 '토핑'이라 표현하는 언어적 요소들은 내 스스로가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이야기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먼저 밝히고자 한다. 그 핵심 키워드는 바로 '해체'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그 이야기가 '선형'linear한 구성을 이루는 경우가 거의 없다.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인지, 그 '시점'을 알 수 없는 비슷한 이야기들을 하나의 스크린에서 보여준다. 그리고 두 사건이 온연히 하나인지 아닌지, 그리고 서로 관련은 있는건지 아닌지 조차도 알 수 없도록 이야기를 '버무린'다. 이를 이동진 평론가는 플롯을 해체한다, 서사를 해체한다고 표현한 바 있다. 나 역시도 이런 부분을 '토핑'삼아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에 얹어보려 한다. 그렇다고 또 홍상수 감독 영화 속 이야기가 또 '병렬'parallel적 구성을 이룬 것인지 아닌지도 애매하다. 뭔가 레고 블록을 어지러뜨려놓고 이것을 조립하고 해체했다가 다시 다른 방법으로 조립해보는 그런 기분으로 스크린 앞에 앉아야만 하는 그런 영화를 만든다. 홍상수 감독은.

언제나 그렇듯(?) 이 영화에서도 영화감독 함춘수(정재영 분)는 화가(김민희 분)와 술을 마시며 호감을 아낌없이 표시한다. 화가는 그게 싫지만은 않다는 듯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다른 술자리가 있으니 그곳으로 가자고 먼저 제안하기도 한다. 영화 속 스토리의 핵심이 되는 상황이 바로 이것이다. 함춘수가 화가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것에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표정으로 상욕을 하는 김민희의 명품 표정연기

 

영화는 분명 2개의 부(部)로 구성이 되어있으나 어느 한쪽에서는 두 번째 술자리에 가서야 자신이 유부남임을 밝히자 거의 표정으로 쌍욕을 하는 수준으로 썩은 무표정이 되는 김민희씨의 명품 표정연기를 볼 수 있고, 다른 한쪽은 애초에 '플러팅'을 하는 과정에서 "나는 유부남이라 당신을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눈물을 흘린다. 그 다른 한쪽에선 김민희씨의 '욕하는' 명품 표정연기는 없지만, 갑자기 술에 취해 훌렁훌렁 옷을 벗고 헬렐레 하는 함춘수의 '살풀이' 명품 연기를 감상할 수 있다. 정말이지 개연성이고, 탄탄한 플롯의 흐름이고 무엇이고를 찾다보면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으로 몰리기 딱 좋다. 그게 바로 홍상수 감독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겠지만, '마'(魔)력이라 볼 수도 있겠다.

이 영화의 전체적인 제목은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지만, 두 개의 부(部)로 구성하며, 1부는 <지금은 틀리고 그때는 맞다>라고 영화의 본 제목을 뒤틀어 표현한다. 부가 되어서야 다시 원래의 제목으로 돌아와 눈이 내리는 장면의 엔딩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 처럼 보이지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그러하듯, 어떠한 상황이 먼저이고 어떤게 나중이며, 두 상황이 동시 다발적으로 이루어지기는 한 것인지, 두 상황이 관련이 있기는 한 것인지, 아니면 오래전 홍 감독의 작품 <오! 수정>처럼 남녀가 자기들이 '기억하기 나름'으로 그저 영화적 장치를 통해 눙쳐버린 것인지... '지금'은 언제 어떤 이야기고, '그때'는 또 언제 어떤 이야기인지. 무엇보다도, 도대체 무엇이 맞고 틀리다는 것인지.

-를 전혀 알기가 어렵다는게 이 영화의 역설적 묘미이고 매력이다.

2024. 05.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