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환상의 빛 幻の光

<류이치 사카모토 : 다이어리, Ryuichi Sakamoto : Diaries>

by 이웃집박선생 2026. 4. 2.



0. 정식 개봉 전, 프리미어 상영에서 한 번. 그리고 어제 두 번 보았다.
그가 사망하기 전, 3년 6개월의 마지막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1. 사카모토 류이치. 영화 좋아하는 사람이면 잘 알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름 한 번 쯤은, 그리고 그의 음악 한 번 쯤은 들어봐서 "아, 이거!"할만한 사람이다. 그는 지난 2023년 3월 28일,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2.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라는 책을 낸 적이 있다. 이번 다큐멘터리영화는 바로 그 책의 '실사판'이라 보아도 좋다. 영화 내에선 '보름달'(滿月)이 자주 나온다.

3. 내레이션은 일본 최고의 배우이자 안무가인 다나카 민(田中 泯)이 맡았다. 아무래도 그의 목소리가 고인 사카모토 류이치 선생의 목소리와 가장 비슷해서 맡게 된 역할일지도 모른다.

4. 실제 사카모토 류이치가 생전에 암 투병을 하며 작성한 일기들과 그에 대한 여러 영상, 사진, 문자 기록들과 주변 인물들과의 인터뷰가 짜임새있게 구성되었다. 사카모토 류이치 선생에겐 의붓자녀를 포함하여 모두 2남 2녀가 있는데, 그 중 차녀와 차남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뮤지션 사카모토 미우, 그리고 영화감독 네오 소라이다. 

4-1. 이들 자녀들에게 고인에 대해 묻고 답하는 인터뷰를 진행한다. 이들은 오직 장남, 장녀, 차남, 차녀 - 및 목소리로만 나타난다. 차녀와 차남 역시 일본 안팎으로 유명한 예술가라 하더라도 여기선 오직 사카모토 류이치 선생에게 집중한다. 그가 사카모토 미우이고, 네오 소라라는것은 직접 나타나지 아니한다. 그리하여 오직 주인공인 고인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연출하였다.

5. 사카모토 류이치의 별명인 '교수'가 자주 나온다. 번역가는 이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고민을 좀 했을지도 모른다. 고인의 별명을 잘 아는 사람들은 아마 영화를 보면서 나처럼 피식피식 웃을지도 모른다.

6. 그가 작성한 일기 모두를 자막으로 번역하지 않은 점은 매우 아쉽다. 그러나 그 모든 번역 내용을 자막으로 보여주려 들면, 보는 이가 정작 영상에 집중하지 못하게 될 수 있을 것 역시 번역자는 고민했을 것이다. 사실 자막으로 번역된 내용 말고, 자세히 보면 흥미로운 내용들이 참 많은데, 개인적으로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e.g. 영화 <괴물> 작업에 대한 언급 등,)

6-1. 영화 음악으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을 작업한 것이 그의 유작이 되었다. 여기서 가장 유명한 곡은 영화 엔딩에 쓰인 'Aqua'이다. 원래도 이 곡은 유명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최근 유희열 씨가 표절한 곡으로도 더 잘 알려져 아이러니를 빚기도 했다. G장조로 시작하는 단순한 선율같지만, 실제 연주해보면 상당히 까다롭다. 그런데도 죽음을 앞둔 쇠약한 몸으로도 그걸 해내는 사람이 있다. '교수'다.

7. 고인이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영상 콘서트인 <류이치 사카모토 : 오퍼스>와도 이어진다. <오퍼스>에서도 나는 '교수'의 손을 유심히 보았다. 특히 손톱을 보았다. 건강한 핏기가 돌지 않고 유독 창백하게 불거진 손톱을 보았다. 아마도 저런 손으로 피아노를 치면 손가락 끝의 감각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플 것인데, ....

8. 고인은 말기 암 투병을 하면서도 이제 그만 죽고싶다는 자포자기보다는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고인의 모습에 경의를. - 그러나 사실, <다이어리>에선 그냥 죽어버릴까. 안락사를 선택할까. 하는 고민이, 그에게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의 거장 장 뤽 고다르가 안락사를 통해 스스로 선택한 죽음을 맞아들인 장면과 고인의 생전 이러한 고민은 오버랩되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졸인다.

9. 사카모토 류이치 선생은 생전 사회운동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고, 또 '행동'한 바 있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절망에 빠진 도호쿠(동북, 東北) 지역을 위하여 도호쿠 유스 오케스트라(TYO)를 조직하고 아이들을 지도하였다.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에도 앞장서기도 하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야만'으로 규정하며 맹렬히 비난하였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해서도, 인간의 어리석음을 맹렬히 비난한다. 고인은 환경운동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작품을 실물 앨범으로 내놓을 시, 가능한 한 친환경적으로 포장하기를 주문하였다. 그 때문에 사카모토 류이치 선생의 후기 작품으로 갈 수록 (LP, CD, DVD, Bluray 등, 모두) 단촐한 종이 케이스로 구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실물 매체 그 자체는 어쩔 수 없는 플라스틱 재질이라 치더라도 말이다.

9-1. 그는 뉴욕의 자택에 그랜드 피아노를 '그냥 두고', 자기가 죽기 전까지 그 피아노가 "어떻게 자연으로 돌아가는가"를 관찰하고, 또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자연적인 소리'를 수집하였다. 뉴욕 자택 정원에 놓여진 피아노는 죽어가는 사카모토 선생과 함께 조금씩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비춰진다. 피아노는 곧 고인 스스로에 대한 상관물이다.

10. 죽음을 앞둔 며칠 전, 본인이 음악감독으로서 지도해온 도호쿠 유스 오케스트라(TYO)의 공연이 있었다. 이 공연 라이브 영상을 병상에서 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그 아이들을 지휘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까지도 눈물 짓게 만들었다.

11. 그리고 며칠 후, 의식은 사라졌지만, 그의 영과 육신이 모두 죽음의 그림자 속에 드리워지기 시작했음에도 피아노를 연주하는 듯 두 손은 계속 움직였다. 그에게 음악은 죽음도 쉽게 앗아가지 못할 본능이었다. 

12. 그가 남긴 책의 제목과 같이, 그는 영화에서도 다나카 민의 목소리를 빌려 "나는 (죽기 전 까지)몇 번의 보름달을 더 볼 수 있을까?"를 질문처럼 독백하고, 독백처럼 질문한다. 그런데 그는 질문만 한 것이 아니라, 매 달 보름달이 뜰 때 마다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거나 영상을 찍어 남겨두었다. 영화 말미엔 그가 죽기 전 촬영한 밤 하늘 보름달 사진이 차례대로 나온다. 그것이 '몇 번'인지는 중요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영화 도입에서 그가 던진 화두가 있었다. - 우리 인간들은 스스로를 무한하다 생각하지만, 그건 착각이라고.

13. (실로. 더 할, 할 수 있는, 해야 할 이야기가 매---우 많지만,)
"Ars longa, vita brevis."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坂本龍一, 1952. 1. 17 ~ 2023. 3. 28.

정말 고마웠습니다. 사카모토 선생님...! 

그의 최후, 죽음도 음악을 그에게서 앗아가지 못하던 때에 나를 포함하여 극장의 모든 사람들은 숨 죽여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坂本龍一, Ryuichi Sakamoto 1952-2023

 

* 덧 : 사카모토 류이치 선생이 젊었을때 은근히 기행도 자주 저질렀고, 개인적인 면모로도 꽤나 괴팍한 모습이 있었던건 사실이다. 그런 성정은 어디 쉽게 떠나지 않는것인지, 투병을 하는 와중에도 익살스런 표정, 몸짓을 하며 어떻게든 웃어보려 노력하는 모습이 유쾌하기도 , 또 한없이 슬프게 보려면 그렇게 보이기도 하였다.

* 고인이 젊은 시절 저지른 기행들 중 하나는, 술에 취한 채로 길을 지나가다 어떤 식당 바깥에 내놓은 음식모형 전시대가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갑자기 화가 나서 그걸 다 때려 부숴버리고 경찰에 연행된 적 있다는 것.

 

2026. 4. 2. 

@첫 프리미어 상영 : 에무시네마,
@두 번째 관람 : 아트하우스 모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