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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냄새 本の匂

김현성, 「자살하는 대한민국」

by 이웃집박선생 2024. 5. 21.

저자와 나의 친분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설혹 나와 그의 관계가 좋지 않다 하더라도, 나는 이 책을 매우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왜? '대안'을 제시하기 때문.

 

 

"결국 '그래서 어쩌라고'에 대한 답을 찾을 수 밖에 없다."

 

1. 본격적인 '헬조선'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참 이전에, 서울대학교 학생 커뮤니티 (aka 스누라이프)였던가 어디에서였던가, 대한민국의 미래는 필리핀이 될 것이란 글이 있었다. 당시엔 나는 이 글의 내용에 공감하지 못하였으나, 이후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나! - 탄식하며 다시 읽게 된다.

2. 세상은 언제나 '말세'였다. 이미 수 천년전 그리스 아테네에서도 아테네의 미래가 어둡다. 젊은이들이 너무 싸가지 없어서 큰일이라 탄식하는 글이 있었을 정도니까.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은 그런 말을 듣는 이들보다 살아갈 날이 얼마 없으니, 그들에겐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보는 세상이 문자 그대로의 '말세'(末世)일 밖에.

3.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이게 실질적인 생활의 위협이 될 정도로 세상이 요상하게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아프고 모두가 우울하다. 반면 아예 세상 근심 걱정 다 잊고 자신의 부유함과 행복함을 자랑하고 전시하는 이들이 저 세상 너머 있는것 같기도 하다. 보색대비를 보는 것 처럼 선명하게 느껴지고 아픈 상처에서 더 큰 아픔을 느끼게 된다.

4. 다시 '헬조선'이야기다. 이제 '헬조선'을 넘어서서 답이 없고 죽어가는 대한민국을 이야기한다. 코인, 무리한 빚투, 무한 우상향 도파민 중독에 걸린 이들과 극심한 빈부격차. 여기 다 말하자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그 이상으로 다 말할 수 없는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딛는 이 나라의 문제들. 시중의 여러 책에서든 언론을 통해서든, 또 유튜브 등을 통해서든 이 나라는 죽어가고 있고 답이 없으며 대한민국 탈출은 지능 순서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5. 실로 그러할 만 한 것이, 가능하다면 더이상 '한국인'으로 자신의 자녀 세대를 키우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는것 같고, 또 실제로도 이 나라가 굴러가는데 대하여 '책임감'을 가져야 할 '높으신 분들'의 자제들 중 일부는 언제 어떻게든 이 나라를 탈출할 준비가 된 검은 머리 외국인 또는 명예 외국인들인 경우가 자주 목격되니 말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적 상황 때문인지 이들은 거의 대부분 '아메리칸'들이다.

6. 이 명예 외국인들 또는 이미 검은 머리 외국인이 된 이들은 다시 한번 이 나라에 생채기를 쉽게 내고 다닌다. 가뜩이나 나 죽네 너 죽네 내가 제일 억울하네, 천하제일 우울대회를 펼치는 이 나라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거나 불난 집에 기름을 부어대며 희번덕댄다. "너희는 망해가는 나라의 개돼지들."이라 우리들 대부분을 쉽게 비웃는다. 어차피 그들은 어떠한 정교한 논리를 칼 처럼 갈아 목덜미에 들이민다 하더라도 자신의 태도를 바꾸지 않을 터이니 기대는 금물이다. 그러니 더이상 화도 나지 않는다.

7.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고 싶은 것은 희망이다. 앞서 말한 검머외 또는 명예 외국인, 혹은 나중에라도 그렇게 될 수 있는 이들은 대한민국 전체를 보았을땐 극소수다. 결국 우리들 중 대부분은 망가진 '우리의 집'을 고쳐서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충분히 '우리의 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8. 그러니 이제 우리들은 입만 열면 이 나라는 망했고 답이 없고 다 죽자고 '선동'하는 이들을 극히 경계해야 한다. (특히 경제적 'second gain'을 노리고 사람들에게 이 나라는 망했다며 '선동'하는 무리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종로 한복판에서 소주에 취해 얼굴 빨개진 상태로 허공에 대고 욕지거리 하고 아무데서나 오줌을 휘갈기는 중장년 남성의 횡설수설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을 만드는 일이다. 욕을 많이 해서 그 대상이 내가 의도하는 대로 움직여준다면 온 세상은 애진작에 비속어로 아름답게(?) 물들었을 것이다.

9. 백 점 만점의 백 점짜리 답안이자 대안은 아닐지언정, 적어도 우리의 현실 그 자체인 '돈의 문제'로 이 나라의 전반적인 문제를 진단하고 저자 나름대로의 해설과 해석,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부분에서 이 책은 충분 그 이상의 매력이 있었다. 저자와 나의 개인적 친분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설혹 저자와 나의 개인적 관계가 좋지 않다 할지라도, 나는 이 책을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건 더이상의 성토대회가 아니라 '대안'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명대사처럼.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We will find a way, always we have.")

그게 '만점' 답안이 아니어도 좋다. 이제 더이상 아픈 소리, 죽는 소리를 내려놓고 함께 답을 찾아야 할 때다. 그 답안이자 대안이란 것이,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그야말로 비상식적인 방향이 아닌 이상.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소중했다. 

나의 천성이 게으른 탓에 이제서야 다 읽고, 또 이제서야 이 책에 대한 글을 남긴다.

2024. 5.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