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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 幻の光

홍상수, <수유천 : By the Stream>

by 이웃집박선생 2024. 9. 19.

 

* 2024년 9월 18일. <수유천>이 개봉한 날, 영화를 감상하고 난 뒤 남긴 간단한 리뷰. 미약한 능력이나마 상세한 '분석'과 '탐구'는 다른 글로 남겨보려 한다.

1. 홍상수 영화에서 처음으로 '빨갱이', '정치적'이란 말이 나온 작품이지만, 작품 전체를 관통할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진 않는다. 이번에도 역시 권해효 배우를 통해 자기 이야기를 하는듯한. 혹은 자신의 어머니 전옥숙 여사나, 학창시절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은근히 비추는 듯한. 혹은 최근 특정 권력자들에 의해 '블랙 리스트'에 오른 예술가들에 대한 위로이자 헌사일지도 모르는. 딱 그정도로 보이고 들리고 느껴졌다. 나에겐.


2. 영화 속 '수유천'은 실제로 서울 우이천을 의미한다. 영화의 주된 촬영장소도 서울의 덕성여대다. 그리고 우이천은 실제 덕성여대 앞을 흐른다. 극 중 김민희가 분한 '전임'은 섬유디자인과(학과 명칭은 명시적으로 나오진 않지만,) 강사이다. 매일 학교 앞 수유천에서 그림을 그리며 '패턴'을 찾는다. 이전 작품은 한강에서, 또 한강의 지류인 중랑천에서 '패턴'을 찾았다. 이번엔 그 중랑천의 또 다른 지류이자 상류 부분인 우이천, 영화 속 '수유천'에서 매일 아침 '패턴'을 찾는다. 솔직히 한번 봐서는 감독이 이것에 무슨 의미를 두었는진 나는 잘 모르겠다. 일단 어찌됐든 상류로 '거슬러 올라'간다.


3. 우리가 아는 서울의 지명 수유동은 수유水踰라 하는데, 영어로 번역한 이 영화의 제목을 <By The Stream>이라 한 것을 보면, 수유천隨流川을 의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를 수 '에 '흐를 류', '내 천'. - '전임'이 그림을 그리고 패턴을 찾고, 그것을 작품에 담아내는 것은 한강에서 지류인 중랑천으로, 또 그 지류인 우이천(수유천)으로 거슬러 올라가 결국 우이천(수유천) 상류에 있는 장어집에서 술을 마시고 물 소리를 듣고 또 '무엇'이 있나 찾지만, 영화 엔딩에서 딱 한마디 남긴다. "아무것도 없어요!!"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감독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따라' 살아보자는 의지를 영화를 통해 말하는것인지도 모르겠고. 꼭 영화 외적인, 홍상수 감독의 사적인 이야기를 뽑아내어 생각하더라도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허망함과 후련함을 동시에 느꼈달까. - 어떻게든 뭐 하나 손에 넣어보려고 버둥거리고 누구를 이기고 누르고 제쳐보겠다고 아둥거리다가 결국 인생의 말미를 병원비에 쏟아붓고 보험금 나오는가 나오지 않는가를 기다리다 떠나느니 그냥 물 흐르는대로 '따라'(隨流)서 사는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 감상이다.


5. 하성국 배우가 분한 뜬금없는 연극 연출가의 대사와 행동거지도 뭔가 야시꾸리하긴 한데, 그걸 그렇게 연기하는 하성국의 능력도 대단하지 싶다.


6. 이번에도 몇 년전 작품인 <인트로덕션>과 같이 못 보던 배우들을 대거 기용했다. 물론 박미소 배우는 그 중에서도 빛이 났다. 


7.  잘 알려져있듯 권해효 조윤희 두 배우는 실제로도 부부사이다. 여기서는 뭔가 '야리꾸리'한 사이로 나온다. 그래서 정말 저게 연기인지, 아니면 실제 두 배우가 집에서 저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건지 구분이 안되어 더욱 흥미로왔다. 이 영화 최고의 개그코드가 있다면 바로 이 두 분에게서 나오는 것이 거의 전부라 봐도 좋다. 언제나 그렇듯 -야리꾸리-한 남녀관계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홍상수 감독 답다. 


8. 카메라는, 즉 감독의 '눈'은 시간이 흘러갈 수록 달이 차는 모습을 바라본다. 즉, 관객에게 '보여준'다. 영화 초반엔 촌극을 준비하여 무대에 오르기 까지 단 열 흘 정도의 시간뿐이라 하였는데, 실제로도 초승달에서 보름달이 되기 까지의 시간이 딱 그정도이다. 선형적 서사보다는 이야기 속 이야기를 뒤죽박죽 섞어 내어놓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답지 않게(?) 시간의 흐름을 눈으로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9. 그 밖에 할 말이 많은데, 이건 언제나 홍상수 영화가 그렇듯 술을 마시면서 나눠야 할 이야기일지 모른다.
번외. 한 번 정도 더 봐야 할 것 같고. 바로 전작 <여행자의 필요>도 한번 더 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여행자의 필요>는 더이상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상황이고, 아직 블루레이나 DVD발매 소식이 없다.

 

2024. 9. 18.

* 부족한 능력이지만, 이 작품에 대해서는 무언가 '평론'을 쓰고 싶어진다. 서두에 밝혔듯, 별도의 글을 언젠간 반드시 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