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향신문>과 <동아일보>를 구독중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하나 하나에 '내 의견'을 가져야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짐짓 아닌 척 하면서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들여다 보고는 있다. 그것도 나름대로는 '공식적'이고, '권위 있는' 경로로 바라보고자 노력한다. 유튜브 같은 것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정말로 아름다운 꽃밭 아니면 개똥밭 디스토피아다. 중간항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그야말로 모 아니면 도.
그러나, 유튜브 따위와 같은 것으로 바라본 세상과 진짜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현실은 다르다. 세상은 <팩트풀니스>에서 지적하는 것 처럼, 그렇게 까지 'X같지' 않다. 그렇다고 마냥 정의롭고 아름답고 향기롭지만 않은것도 사실이다. 무어- 끊임없이 아름다움과 추함 사이를 역동하고 진동하는, 그게 바로 삶이고 세상 아닐까. 그러니까 '사회'아닐까.
아무튼.
내가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 매체를 버리고 종이 신문을 굳이 구독하고 열독하는 이유는 AI가 어쩌구, 새로운 것이 어쩌구. 세상에 대해 만물박사인 척, 세상 달관한 척, 다 아는 척 하기 이전에 '레거시 미디어'부터 제대로 들여다 보았는지, 에 대한 자기 반성적 의미도 크다.
특히 정치와 윤리, 첨예하게 다뤄야 할 이념과 관련된 부분에서 나 부터가 진영논리에 빠져 어떤 신문은 어떻다고 낙인을 찍고 아예 쳐다도 보지 않았는지, 또 어떤 것은 일단 '내가 읽기 편하다'는 이유로 맹목적인 애정을 쏟지 않았는지. '요즘 같은 시대'에서의 종이 신문 구독은 그러한 반성의 의미로서 다시 시작한 행동이었다.
-
2.
<경향신문>은 매주 금요일마다 '매거진'이라는 별도의 지면을 제공해준다. 이번 주 경향신문의 '매거진'은 "부부는 마이너스(-), 남남은 플러스(+)"라는 제목으로 '혼인신고 손익계산서'라는 읽을 거리를 마련해두었다. 결혼해서 '하나'가 된 상태로 살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부분이 더 많다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실제로 내 주변에도 사실혼 관계에는 있으나, 아직 법률혼 관계에 있지 않은 부부들이 많다. 세무적인 부분이나, 대출, 그리고 주택 청약. 부(富)를 추구하는 소위 '재테크'적 면에서도 둘이 하나가 되는 것 보단, 따로 또 같이를 추구하는게 더 유리한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분명 사실혼 관계의 부부이지만, 집주인과 세입자 관계인 부부가 있다. 법률혼 관계까지 이뤄져서 '하나의 가정'이 되어버리면 부부가 각자의 이름으로 주택을 가지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또한, 부부가 법적인 '남'으로서 집주인과 세입자 관계가 되면 대출을 받아 돈을 융통하기가 쉬워진다. 남편은 소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을정도로 빚을 낸다는 의미)하여 주택을 구입하고, 아내가 전세 세입자가 되어 '영끌'을 통한 부채를 어느정도 메꿔 원리금 줄이고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 가능해진다.
분명 사실혼 관계의 부부이지만, 싱글 파파, 싱글 마더처럼 사는 사람들도 있다. 법률혼 관계는 아니기에 자녀를 낳아 기르기는 하지만, 어느 한 쪽의 자녀로만 출생신고를 한다. 이런 경우 '편부/편모'가정으로서의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관가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알고는 있으나, 현실적으로 가가호호 방문하여 조사를 하기 어려운 점 등을 들고 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심지어 자녀가 법적인 성년이 될 때 까지 혼인신고서를 제출하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다. 이 모든 '혜택'을 누릴 수 있을때 까지 다 누려야만 하지 않겠냐, 면서.
일견 이런 이들을 보면 못된 세금 도둑놈년들이란 소리가 절로 나올 것이다. 법과 제도의 맹점 또는 헛점을 이용해서 자기들만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는 이기적이고 못된 사람들이라 손가락질 받아 마땅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건 그 너머에 있는 '현실'이다. 그들도 정말로 서로 좋아서 결혼을 했고, (그것이 일단은 법률혼이 아니라 하더라도) 가정을 이루었는데 왜 '저런 방식'으로 살아야만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 상황 말이다. 거기에 대한 고민은 과연 하긴 했는지에 대한 반문을 또한 하지 않을 수 없다.
결혼식을 올리고 '정직하게' 혼인신고를 하는 사람이 세금 폭탄을 맞게 되거나, '살 곳'을 구하기 어려워 지는 상황에 처해지거나, 자녀를 낳고 기르기 더 애매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진다면 그것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진작 자세히 들여다보았어야 했다. 예나 지금이나 '집을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지만, 자산시장은 예전보다 심하게 불타올랐고, 그밖에 여러가지 우리를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이 숱하게 바뀌었음에도 법과 제도는 아직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거기서 벌어지는 문제, 그것을 대해야 할 이들 중 지금까지 그 누구도 정면으로 대한 적 있던가?
그렇다. 그와 같은 노력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을 기대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때는 그런거 없었는데~", "다 단칸방에서 오손도손 시작하는거야^^"라며 사고(思考)하는 그 자체를 멈춰버린 이들이 별 달고 꺼드럭거리는 세상에서 무엇을 더 바라랴. 그런 이들이 왼쪽 가슴에 무궁화 꽃을 피우고 나 잘났다며 으스대고 다니고, 나 몇 급 공무원이요 나 국장이요 나 실장이요, 차관이요 장관이며 총리며 대통령이라 떠들어대기 바쁜 나라에서, 인민 알기를 우습게 아는 나라에서 무엇을 더 바랄까?
앞으로 아름다운 결혼생활과 출산, 그리고 행복한 자녀 기르기는 오직 '금수저 백수 커플'에게만 주어질 삶일지도 모른다. 머리에 꽃밭만 든 이들이 무라카미 타카시의 꽃 그림처럼 해맑게 웃기만 하는 세상 아래에서는 법과 제도의 헛점을 악용하는 이들의 디스토피아가 계속될 것이고, 그렇게 세상은 중간 스펙트럼 없이 쪼개질 것이라고만 본다면,
좀 그런가...? 아니다. 난 정말 그렇게 생각하거든.
2024.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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