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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 幻の光

크리스티안 틸레만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브루크너 교향곡 8번

by Fred.Park 2019. 11. 2.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들 중 하나인 빈 필하모닉이 우리나라를 찾았다. 지휘자는 독일 출신의 크리스티안 틸레만이다. 레퍼토리의 범위가 좁다는 비판을 듣기도 하며, 극우파 논란이 있기도 하지만 정통 독일계 인사로서, 또 실력있는 지휘자로서 그 이름이 높은 사람이다. 바그너, 브루크너, 베토벤 등 독일계 작곡가들의 작품에 대한 해석 역시 일품으로 그 명성이 자자하다.

 

그러한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세계구급 지휘자가 우리나라를 찾았다. 티켓 값은 꽤나 비쌌다. R석이 43만원이고, 가장 싼 가격의 좌석도 7만원이었다. 나는 R석을 선택했다. 당장 티켓 가격만 보면 분명 돈낭비한다 할 만도 할 가격이다. 그러나 빈 필하모닉과 틸레만의 연주를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러한 나의 생각과 믿음은 내가 생각했던 것, 믿었던 것 그 이상의 기쁨으로 돌아왔다. 스스로에게 내린 올해 최고의 사치 중 하나이지만, 더이상 이는 사치가 아니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던 그런 하루였다.

 

아까 퇴근 전 안좋은 일이 하나 있었다. 약 대신 생활습관을 바꾸기를 권장하였으나, 내가 티칭해준 내용을 심하게 곡해했던 결과 보호자까지 내 진료실로 찾아와 언성을 높인 일이 있었다. 끝내 잘 설명을 하며 오해를 풀긴 했으나, 퇴근길 발걸음이 무거울 수 밖에 없었다. 분명 나는 근거를 갖고, 또 나의 경험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진료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다. 그러나 그 안좋은 일은 완벽히 잊어버릴 수 있었던 연주였다.

 

 

 

오늘 무대에 오른 작품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의 여덟번째 교향곡이었다. 브루크너는 만 70세를 살고 세상을 떠난 음악가였다. 당시 기준으로 본다면 장수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브루크너가 '작곡가'로서 대접을 받은 것은 꽤 늦은 편이었다. 00번 또는 -1번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습작 교향곡과 0번을 포함해서 총 11개의 작품과 각종 미사곡, 합창곡 등을 작곡한 바 있으나 그를 오늘날에도 기억되는 인물로 만들어준 작품은 단연 11개의 교향곡들이다.

 

그 중에서 7, 8, 9번(미완성) 후기 교향곡들은 오늘날에도 자주 무대에 올라오는 작품들이며,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들이다. 오늘 무대에 오른 교향곡 8번은 소위 말하는 스케일이 큰 곡이기도 하거니와, 형식적으로도 작곡가 자신의 작곡 기법을 총동원하였기에 연주 시간이 꽤나 긴 편이다. 특히 3악장 아다지오와 4악장 피날레는 느리게 지휘하는 지휘자인 경우 각각 30분, 25분 정도가 소요되어 두 악장 연주하는데만 한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현악 5부, 금관, 목관, 타악기 모두 틸레만은 세세히 자로 잰듯 정확히 그 경계선을 나누었다가 다시 그들을 지휘봉으로 모두 아름답게 엮어내어 청중들에게 들으시오, 하고 내놓고 있었다. 앙코르 곡으로 연주한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왈츠 Op.235는 끝내 우리를 빈의 무지크페라인으로 잠시 데려가준 기분마저 들게 하였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서울 서초구의 예술의전당이었으나, 두 시간동안 우리는 오스트리아에 다녀온 셈이었다. 그러한 착각마저 들게 했던 아주 잠깐의 시간이었다. 그렇다 지금 나는 빈에서 이제 막 귀국한 사람인 것이다!

 

다녀왔습니다!

 

2019. 1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