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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 幻の光

<왕의 남자>, 이준기 감우성 정진영 주연

by Fred.Park 2019. 10. 5.

 

 

간만에 잠들기 전, <왕의 남자>를 보았다. 일단 왜 진작 넷플릭스를 이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그보다는 어렸을때 본 이 영화와 지금 이 영화가 너무나도 다르게 다가왔다는 점이 스스로 생각해도 소름 돋는 부분이다.

 

영화는 물론 무언가를 보는 눈이 매우 좋지 않고, 그 수준이 낮았던 내 입장에선 그저 이 영화는 이준기를 미소년 역할로 출연시켜 동성애 코드를 집어넣은 정도로만 이해했었는데 지금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게 만드는 것을 보게 된다.

 

뭐 일단 생각나는 것들을 주절주절, 두서없이 늘어놓자면 다음과 같다. (1) '정치'에 이용당하는 '연예인', 즉 영화속의 '광대'들 (2) 연산군의 내적 트라우마를 끄집어내는 '예술'의 힘 - 그 결과가 치유든 악화든간에 (3) 과거 광대는 천한 취급을 받았지만, 결국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연극, 영화, 음악, 미술 등도 없었을 것이란 생각 등이다. 뭐, 이외에도 연산군을 조금 더 다른 시각, 깊은 투시력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 또 여기 다 말하지 못할 여러가지 생각들.

 

무엇보다도 엔딩. 중종반정이 일어나는 장면을 배경으로 서로 허공에 줄타기를 한 상태로, 그러나 줄타기 하는 이의 중심을 잡는 부채를 손에서 놓아버리고 세상도 놓아버린 두 광대. 즉, 자살을 의미한다. 그리고 음악이 또 어디선가 많이 듣던 분위기다 싶었는데, 역시 이병우가 작곡한 음악들. 어렸을땐 그저 그러려니 하고 봤던 영화인데,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이 나올 뻔했다. 스탭 롤이 올라가기 전, '저승길' 장면은 더더욱. 겉보기엔 밝지만, 사실 그것은 저승길. 모두 다 저승길 길동무가 된 광대들.

 

고등학생때 아무 생각 없이 봤다. 말 그대로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앞서 말했듯, 그냥 이준기를 앞세워 꽃미남 열풍 일으키게 하고 동성애 코드 집어넣어 티켓이나 팔아먹는 그런 영화인줄 알았다. 그것은 나의 큰 착각이었고, 모자란 생각이었다. 그동안 오랫동안 이 영화를 다시 찾아 보진 못했다. 그런데 오늘로 한 13년 만인가? 그럼에도 그 긴 세월을 넘어 처음 보는 영화나 다름 없이 보는데도, 그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되었다. 어른이 된 덕분일까. 세상 때를 조금 타게 되어서 그런걸까. 잘은 모르겠다. 그리고 보이지 않던게 보이게 되는건 과연 바람직한가 아닌가 또한 생각 내지 고민한다.

 

밤이 깊어간다.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야만 한다. 그래야 출근을 하니까. 그래, 자야지.

 

2019. 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