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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목소리 星の声

Symphony No.9 - Gustav Mahler

by Fred.Park 2014. 11. 11.

말러의 음악을 좋아하는 나조차도 교향곡 9번은 쉽게 듣지 못한다. 1악장에서 드문 드문 등장하는 악기들의 울음소리가 당시 미술사조에서 유행했던 점묘주의 형식과 닮았다 어떻다 하는 지식도 물론 이 음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만, 역대 어느 음악가들 중 말러만큼 자신의 파토스pathos를 처절하게 악보에 그려낸 사람이 드물다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9번 교향곡을 귀에 걸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나만 그런건가?

특히 4악장은 항상 나로 하여금 눈물을 쏟게 만든다. 얼마전 임헌정 마에스트로와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했던 말러 교향곡 9번 4악장 말미에선 억지로 솟아오는 슬픔을 참느라 가슴이 메일 정도였다. 특히 내가 앉았던 객석 정면에 있던 어느 제1바이올린 주자는 마지막 pppp(피아니시시시모)로 잦아드는 부분에서 누가 보아도 슬픈 표정을 지으며 연주를 마친 것을 보니 나도 덩달아 감정이 북받쳤다.

말러는 천재적인 음악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인생은 단 한번도 행복다운 행복이 존재하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부러워할만한 묘령의 미인과 결혼도 하였고 지휘자로서도 작곡가로서도 성공가도를 달리고는 있었지만 그에게는 항상 '죽음'이라는 키워드가 머릿 속에 공기처럼 가득 자리잡고 있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고 무색, 무미, 무취라지만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에게는 '죽음'은 언제나 그렇게 존재했었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죽게 마련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수십년 뒤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으며 한 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나 역시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을 알고는 있다. 그렇다고 하여 내가 세상을 이미 달관하고 초탈한것 마냥 태도를 잡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말러는 다르긴 달랐다. 자기 자신보다는 어렸을 적 부터 형제들을 다른 세상에 묻는 경험을 하였고 그 때문에 '살아남은 자'의 짐이 너무나도 무거웠을 것이다. 그 정도로 끝났다면 다행이지만 결혼 이후에 딸 역시 먼저 다른 세상에 묻게 되는 비극을 맞는다. 그의 작품이 모두 어둡고 혹은 무시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교향곡 8번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죽음'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을 청자 입장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다. 말러는 그처럼 자신의 파토스를 한 터럭의 여과없이 악보에 그려넣는 사람이었다.

지휘자로서의 명성과 천재 음악가로서의 '포스'에 반한 묘령의 여인 알마 쉰들러는 점점 그가 가진 지나친 천재성과 '어두운 모습'에 질려가기 시작했다. 결국 말러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말러가 그것을 몰랐을 리는 없다. 거기다가 결국 자기 자신도 심장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죽음의 그림자'가 이제는 자기 자신의 눈동자까지 가까이 왔음을 그도 직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9번 교향곡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말러의 다른 교향곡들에 비해 생각보다 짧은 기간에 완성이 되었지만, 개인적으로 추측하건대 말러는 이미 오래전부터 9번 교향곡을 구상해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말러가 창작에 아무리 온 힘을 쏟아부었다 하더라도 그의 교향곡은 최소 2년 이상의 기간을 거쳐 완성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말이다. 

아무튼 9번 교향곡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그리고 실질적인 마지막 작품, 그리고 4악장 말미는 꺼져가는 촛불처럼 조용히 꺼져가는 것을 그려내었다. 꺼져가는 말러 자기 자신의 삶을 그렇게 오선지 위에 그려내었다. '심포니'라 하면 보통 화려한 피날레를 생각하게 마련이지만 말러의 교향곡 9번은 그렇지 않다. 조용히 죽어가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이 세상과 이별한다. 안녕, 안녕. 그렇게 내 삶은 꺼져 간다.

그래서 나는 말러의 교향곡 9번을 쉽게 들을 수가 없다. 왜인지 모를, 또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때문에 4악장 끝까지 들을 수가 없으니까. 언제나 죽음의 그림자 때문에 괴로워했던 그가 생각나니까. 그의 삶이 자꾸만 떠오르니까. 하지만 오늘은 용기를 내어 들어보려 한다. 그렇게 조용히 나도 하루를 마무리하고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보려 한다.


말러 교향곡 9번, 4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