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별의 목소리 星の声

잠들지 못하는 밤에 휘갈겨 쓴 야상곡 '하나' (특히 브람스의 교향곡 1번에 대하여)

by Fred.Park 2014. 10. 16.

시험공부하다 이제 잠들기 전에 음악이 사람의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한번만 깊이 생각해보자. 우리는 휴식을 취하거나 기분전환을 할때 음악을 듣는다. 클래식 음악이든 록이든 힙합이든 장르의 구분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청취자가 보여주는 몸의 반응이다. 감동적인 음악을 들을때 뒷목이 싸해지는 전율을 느낄 수도 있고, 슬픈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가라앉다못해 나도 함께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있다.


이소라가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여 '바람이 분다'를 열창했을 때를 생각해보자. '바람이 분다'는 이소라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노랫말로 유명하다. 또한 누가 들어도 매우 시적인 가사라는 것을 곧장 눈치챌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에 젖었던 부분은 "추억이 담겨져있던 머리위로 바람이 분다."였다. 대중가수가 아닌 마음과 생각이 깊은 시인이 이런 가사를 썼다 해도 충분히 믿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시의 낙구처럼 "눈물이 흐른다"라는 짧은 말로 노래가 마무리된다. <나는 가수다>에 방영된 모습만 봐도 방청객에서 눈물을 흘리는 청자들이 꽤나 있던 것을 보면 음악이 사람의 신체의 미치는 영향이 '있다 없다'로 논의를 이끄는 것은 문자 그대로의 '시간낭비'라 표현해도 절대 과장이 아니다.





김동률의 명곡 '동반자' 역시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 만났던 사람에 대한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김동률이 이 곡을 작곡했던 시기는 지금 나의 나이보다 어린 스물 네다섯살 즈음이었다. 김동률은 당시 만나고 있던 연인과 헤어지며 "내가 너에 대한 곡을 써도 좋을까."라고 물었고, 그 여성분은 "그러든지 말든지"라며 코웃음 쳤다는 뒷 이야기가 있는데 지금 그 사람이 '동반자'를 들으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긴 세월 지나 그대의 흔적 잃어도. 이 세상 그 어느곳에서 살아만 준대도. 그것만으로도 난 바랄게 없지만. 행여라도 그대의 마지막 날에, 미처 나의 이름을 잊지 못했다면 나즈막이 불러주오."



그리고 김동률 본인도 그런 점을 의식했는지 5집 '오래된 노래'에서 '동반자'를 암시하는 가사를 썼다.


"네 맘이 어땠을까. 라디오에서 길거리에서 들었을때 부풀려진 말과 꾸며진 말들로 행여 너를 두번 울렸을까. 참 미안해. 이렇게라도 다시 너에게 닿을까 모자란 마음에..."


어떤 이유에서든 얻음(?.. 표현의 저속함은 나의 언어구사능력 부족때문이므로 너그럽게 용서를 부탁드린다)과 상실을 겪은 사람이라면 이런 노래가사와 구슬픈 가락에 반응을 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감정이 쿼크단위로도 남지 않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김동률 4집의 '잔향' 역시 우중충한 피아노 연주로 노래가 시작되지만, 가사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절절한 울부짖음이 그대로 녹아있기에 이 곡 역시 '그랬던 적이 있는 사람들'을 울리기엔 충분하다. 김동률의 음악 정서상 이 곡 역시 실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불과 서른살 즈음의 나이에 누가봐도 시詩적인 가사와 구슬픈 멜로디를 만들어낸다.


"그 언젠가 해묵은 상처 다 아물어도 검게 그을린 내 맘에 그대의 눈물로 새싹이 푸르게 돋아나 그대의 숨결로 나무를 이루면 그때라도 내 사랑 받아주오 (...) 사랑하오 얼어붙은 말 이내 메아리로 잦아들어 가네"


'그랬던 적 있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한 공감과 충분한 눈물을 가지고 이 노래를 들었을 터. 그 때문에 김동률은 뭇 남성들을 울리고 전율케하는 눈물 제조기라 불릴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실제 과거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장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음악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지원하면서 말러 교향곡 6번을 연주하였는데, 이 곡을 지휘하며 그는 심박측정기를 몸에 달고 지휘를 했다고 한다. 결과는 참으로 놀라웠는데 생명에 지장이 갈 정도의 심박수를 기록했었다. 이쯤이면 정말로 음악이 사람의 몸에 미치는 영향을 '그렇다 그렇지 않다', '영향이 있다 없다'로 논하는 것은 정말로 시간낭비일 뿐이다.


이런 연구를 더욱 발전시켜 체내 호르몬 분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논문화하는것도 재밌는 결과를 만들어낼 것 같다. 가령 나같은 말러 빠돌이가 교향곡 2번 "부활"의 마지막 피날레를 들으며 전율을 느낀 이후 내 혈액을 일정량 채취하여 어떤 변화가 있는지 확인하는것도 참 재밌을 것이다. 구약성서 시편에 "숨쉬는 모든것은 모두 주님을 찬양하라!"라는 말이 있듯, "감성이 있는 모든 것들, 음악을 들으면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 또 하나의 어록이 될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또 하나 하자면 어떤 음악의 바로 아랫 부분을 들으면 아무리 슬픈 감정에 휩싸인 상태라 하더라도 조금이나마 마음이 풀리곤 한다. 요하네스 브람스의 교향곡 1번 4악장의 가장 유명한 부분이다. 1악장에서는 6/8박자로 운명의 시곗바늘 소리와 같은 팀파니 소리를 때려대고, 현악기는 불안하게 상승하며 목관악기는 불안하게 하강하는 선율을 그려낸다. 실제로 그는 이 작품을 작곡하면서 고뇌에 고뇌를 거듭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절대로 함부로 사랑해서는 안될 사람을 사랑했으며 20대에 이 작품의 작곡에 착수했으나 결국 2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 완성해냈다. 그 과정에서 겪었던 아픔은 '그래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꼭 '짝사랑'의 문제로 국한하지 않더라도 상실, 또는 살면서 느끼는 좌절감을 한번이라도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2악장과 3악장의 차분했던 부분을 지나 4악장에서 다시 주춤한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로 우중충한, 그리고 뚝 떨어지는 멜로디로써 그는 다시 한번 좌절감을 표현했지만, 그는 여기서 20년의 세월동안 보고 듣고 느낀 좌절과 역경을 털어내기 시작한다. 멀찍이서 알프스의 나팔소리가 개선행진곡처럼 들려오기 시작한다. (이 부분은 브람스 자신의 스승이자 든든한 후원자인 R. 슈만의 생일 축하를 위해 쓴 곡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결국 62마디에 이르러 그는 말한다. 마치 십자가에 달려 구원의 약속을 이뤄낸 예수 그리스도처럼 나즈막이.




"다 이루었다..."



그리고는 모든 고통을 하나씩 털어내고 기쁨을 느끼기 시작한다. 단지 오늘밤 나는 그가 느꼈던 감정, 그리고 그가 겪었을 몸과 마음의 변화를 함께 느끼고 싶을 뿐이다.


내가 만약 지휘자라면 나도 카라얀처럼 심박측정기나 뇌파측정기를 달고 포디움에 올라 브람스 교향곡 1번을 연주하고 싶다. 아마도 매우 다이나믹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이 든다. 매 악장마다 피를 뽑아 검사해보면 더더욱 재밌는 결과가 나오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 모든것을 털어내진 못했다. 내가 기다리는 것이 있다면 차분히 기다릴 것이고,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면 묵묵히 해내야 할 것이고 감당해야 할 것이 있다면 어떻게든 감당해내야 할 뿐이다. - 이런 생각을 또 하나의 화두로써 감싸 안아들고 잠을 청해보려 한다.





20대의 브람스, 그리고 중년 이후의 브람스. 
내 인생의 작은 소원이 있다면, 바로 이런 위대한 음악가들처럼 중후하게 나이들고 싶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