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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목소리 星の声

"1번 교향곡 이야기" - 요하네스 브람스

by Fred.Park 2015. 11. 10.

작곡가 아무개의 몇 번 교향곡이라 하면 당연히 작곡한 순서대로 번호를 붙이게 된다.[각주:1] 하이든은 100개가 넘는 교향곡을 남겼고, 모차르트는 41개의 교향곡을 남겼으며, 베토벤은 9개, 브루크너는 습작 교향곡 까지 합쳐 총 11개의 교향곡을 남겼다. 교향곡들 중 베토벤 교향곡 9번, 말러의 2번 등 유명한 작품들이 무대에 올라오는 것도 평상시 흔치 않은 판에 특별히 '덕후'수준의 덕력을 장착하지 않는 이상 각 작곡가별로 1번 교향곡을 들어볼 기회는 흔치 않다. 음반으로는 특정 작곡가의 작품을 두고 '작정을 하고' 모조리 녹음하는 기염을 토한 것 아닌 이상은 음반으로도 만나기 힘든게 어지간한 '1번 교향곡'의 현 주소이다.

그러므로 다소 거칠게 말하자면 대부분의 1번 교향곡은 실제 연주로도 듣기 힘든 작품이고, 다소 마이너하다는 느낌마저 주곤 한다. 보통 작곡가가 젊었을때, 혹은 음악적으로 말년에 비해 원숙하지 못했을때 작곡된 작품이기에 그런듯 싶다. 그러나 1번 교향곡이라도 분명 위대한 작품은 있다. 

유명한 '1번 교향곡'을 떠올리라 하면 보통 말러의 <거인 Der Titan>이나 바로 이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말러의 교향곡 1번은 초연부터 큰 호평을 받지 못한 반면 브람스는 '베토벤 교향곡 10번'이라 불리울 정도로 극찬을 받았다. 이에 브람스는 "음악을 모르는 사람들도 들으면 그정도는(내가 베토벤을 존경하고 그를 닮으려 했다는 것을) 안다."며 위대한 선배 음악가인 베토벤에 대한 표절이라 불리울까 두려워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브람스는 베토벤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을 작곡했다는 칭찬은 곧이 곧대로의 칭찬으로 들리긴 힘들었을 터.

1악장에선 원래는 브람스가 구체적인 템포를 지시하려 했으나, 해석의 다양성을 위해 Un poco sostenuto(아주 음을 약간 끄는듯이)로 적어두었다. 다 단조 6/8박자로 바이올린과 첼로는 상행하고 비올라와 기명악기는 하행하고, 콘트라베이스와 팀파니는 무미건조한 한 음정 연타를 퉁퉁퉁 하기에 이른다. 이 연타를 두고 어떤 이는 '운명의 시곗바늘 소리'라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다르게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를 '심장박동소리'로 듣는다.

만약 내가 이 작품을 지휘한다면 단원들에게도 꼭 그런 생각으로 이 부분을 연주해주길 주문했을 것이다. 또한 연주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과 기뻤던 순간 하나를 선택하여 그것을 생각하며 연주해주시길 주문했을 것이다. 1악장은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번민하는 상황을 떠올리며 연주하라 지시하고, 조금씩 고통을 이겨내고 희망으로, 환희로 나아가는 상황을 생각하라고 지시했을 것이다.


1악장 도입부. 팀파니는 무미건조하게 '쿵쿵쿵쿵쿵쿵' 울리기만 한다. 불안한 심장박동을 연상케 한다. 또한 1악장의 음정 지시가 Un poco sostenuto임을 고려했을때 이는 매우 '느리고 질질 끄는' 악장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후 안온한 분위기의 2악장과 목가적인 클라리넷 선율이 일품인 3악장이 지나고 다시 불안한 저음 현악기의 울림으로 시작되는 4악장이 나타난다. 그러나 1악장과 같은 불안함은 오래 가지 않는다. 불안함과 초조, 그리고 그에 따른 '심장박동'은 이내 가라앉고 금관악기의 코랄이 끝난 뒤 드디어 환희에 젖기 시작한다.

61마디에서 시작되는 현악의 환희. 그냥 듣기엔 단순한 다 장조의 선율이지만 듣는 이로 하여금 슬픔에서 기쁨으로 단박에 구제해준다. 그리고 여기서 깔리는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피치카토야말로 진정으로 기쁨에 가슴이 뛰는 심장소리를 표현한듯 하다. 터질것 같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기뻐하는 모습. 상상이 되시는지?


첼로(Vcl, Violoncello)와 콘트라베이스(Kontrabass)의 피치카토를 잘 음미해보자.


이 작품의 권위적인 해석이 어떠한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브람스 교향곡 1번을 이해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심장박동'이다. 심리와 정신의 상태는 분명 몸으로 표현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분히 기계론적이고 환원론적인 사고로는 우리 몸이 심리 상태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심장은 왜 뛰는가? 설레는 순간, 사랑을 할때, 긴장할때 왜 우리는 심장의 떨림을 느끼는 것인가? 정신은 그렇게 우리의 몸으로 반영되고 나타난다.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은 바로 이렇게 내게 다가왔다. '심장박동'. 그리고 그는 위대한 음악가였기에 단순히 몸으로 표현된 현상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옮겨내기에 이른다.

브람스는 20대에 이 작품을 작곡하기 시작하여 2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 4악장까지 완성해낸다. 20년의 세월을 거치며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모두 느껴보았을 것이며, 이를 맛으로 표현한다면 단맛 쓴만 짠맛 신맛 비린맛 모두 느껴보았음직한 세월이렷다. 그 때문에 1악장에서 불안하게 느껴지던 팀파니의 '심장박동'은 이내 4악장의 안온한 피치카토로 표현되기에 이른다.

조금씩 모든 악기가 기쁨에 차 상승하는 가운데 다시 한번 해당 주제가 울려퍼진 후 이 작품은 장대하게 마무리된다. 브람스는 이후 3개의 교향곡을 더 남기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 브람스의 명성에 비해 남긴 교향곡의 수가 적은것 아니냐 할 수 있겠으나, 중요한건 작품의 '양'이 아니다. 브람스와 같이 하나의 작품을 만들더라도 수백개의 작품에 비할 수 없이 훌륭한 것이 있다면 다작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브람스의 교향곡으로서는 첫 작품이지만, 위대한 음악의 계보를 이어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이라 불리울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낭만주의 시대 속에서 형식적으론 고전주의의 틀을 갖추었으나, 그 안에서 '속박 속의 자유'를 만들어낸 브람스에게 다시 한번 깊은 경외를 느낀다.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최희준 선생이 함께 연주하는 브람스 교향곡 1번 (작품 68) 4악장.
환희에 가득차기 시작한 61마디부터 들으려면 4분 45초로.

  1. 예외도 있다. 그러나 교향곡의 번호는 작곡을 '시작'한 순서가 아닌 '완성'한 순서로 붙이게 되므로, 어떤 의미에선 예외가 있다고 볼 수 없기도 하다. 어떤 작곡가는 하나의 교향곡을 한번에 작업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작곡가는 한번에 여러 편의 교향곡을 작업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슈베르트의 경우 8번 교향곡은 "미완성"이라 불리우며, 완성된 부분은 2악장 까지지만, 9번 교향곡은 또 "대교향곡"이란 이름으로 완성되어 남아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