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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목소리 星の声

하늘에 올리는 마지막 기도, <브루크너 교향곡 9번>

by Fred.Park 2016. 2. 6.



레너드 번스타인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는 브루크너 9번 교향곡,
번스타인의 외모를 보아하니 말년에 녹화한 연주 영상인것 같다.



대기만성형 음악가를 꼽으라면 단연 브루크너다. 브루크너의 초년에서 중년까지는 오르가니스트와 음악 이론가, 음악교사로서는 명성을 날렸으나 작곡가로서는 별다른 찬사를 누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장년, 말년에 들어 주목받기 시작하고 또 세월이 지나 그의 작품이 재평가된 이후로는 명실상부 위대한 작곡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말러가 자신의 작품에 자기 자신의 '파토스'를 가감없이 뿌려댔다면 그는 '신앙심'을 그의 작품 속에 녹여낸 사람이었다.

오스트리아 황제에게 헌정한 8번 교향곡을 마친 이후 곧바로 9번 교향곡 작곡을 시작한다. 그러나 가난에 찌들었던 시절이 너무나도 길었기에 그의 체력은 조금씩 쇠약해졌고 죽음을 앞두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브루크너는 작곡을 멈추지 않았으나 끝내 이 마지막 교향곡 9번은 4악장 스케치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는 유언으로 교향곡 9번의 3악장 연주를 마친 후 자신의 종교음악인 <테 데움> Te Deum을 연주해주기를 주문하였다. 미완성된 4악장은 일부 음악학자들이나 편곡자들에 의해 공연용으로 완성되기도 하였으나, 보통은 미완성된 3악장 까지만 연주하거나 그의 유언대로 <테 데움>을 연주하는 것이 예사이다. 그러나 D단조의 9번 교향곡이 C장조의 <테 데움>으로 마무리되면 무언가 어색하기도 하거니와 이 작품이 미완성된 작품임을 굳이 강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의견 때문에 완성된 3악장까지만 연주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나 미완성된 교향곡이라하여 3악장까지의 연주가 전혀 완성도가 떨어지는것은 아니다. 각 악장은 브루크너가 지시한 악상에 걸맞게,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지금까지 브루크너 평생의 작곡방법이 모두 녹아있다. 연주자들의 오른팔은 매우 아프겠지만, 현악의 약한 트레몰로로 시작하는 '브루크너 오프닝'은 물론, 모든 악기들이 잠시 투티(총주)를 멈추고 고요함을 유지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브루크너 휴지'는 미완성으로 남아있으나 '신비로운' 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브루크너 특유의 작곡 방식이다. 탄탄한 구성은 이 작품을 설명하는 또 다른 수식어이자 '덤'이다.



"모든 예술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왔으니, 음악도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1악장 Feierlich, Misterioso(장엄하고 신비롭게)에서는 안개속을 헤치며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듯한 분위기, 즉 브루크너 특유의 현악 트레몰로로 시작하여 금관의 울림으로 '이 작품은 장엄하다.'는 것을 알린다. 현악 피치카토가 잠시 지나간 뒤 평화로운 선율과 긴장감 넘치는 선율이 왔다갔다 하며 신비로움을 더하고 난 뒤 코다에서 강렬한 투티를 두들긴 후 1악장을 마무리 짓게 된다. 죽음을 앞둔 브루크너의 혼란스러운 심경이 느껴지는듯 했다. 코다에서 강렬하게 울려퍼지는 관악기는 그의 비명소리같고 쉴새없이 두들겨지는 팀파니 소리는 그의 심장소리와 같다. 2악장에서 강렬하게 울부짖을 것을 예고하는듯 하다.

2악장 스케르쪼, Bewegt, Lebhaft(격정적이고 강렬하게)는 브루크너의 여느 스케르쪼 악장에 비해 강렬하고 야성적이다. 평소 꼼꼼하고 세심하다못해 소심하기까지 한 브루크너의 성격상 이런 강렬한 스케르쪼는 죽음을 앞둔 상황이 아니라면 작곡할 수 없을 것이라 보아도 무리한 해석은 아니다. 클라리넷을 위시한 관악기가 2악장의 시작을 알린 후, 회광반조(回光返照)란 말 처럼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몸부림 치듯이 현악기와 팀파니가 긴장감을 조성하기 시작한다. A-B-A-C-A와 같은 구조로 긴장감 넘치는 강렬한 음과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한 선율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다보면 이제 이 세상에 어떤 여운도 미련도 남기지 말고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듯 뚝 끊어지는 엔딩으로 마무리 짓는다.

3악장 Adagio. Langsam, feierlich(아다지오. 느리고 장엄하게)는 말러 교향곡 9번의 4악장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현악기의 슬픈 울림으로 시작된다. 죽음을 앞두며 삶을 정리하는 작곡가의 눈물이 흐르듯 하더니 이내 마지막 기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미완성된 작품이기에 오늘날 사실상의 마지막 악장으로 평가받는 이 3악장은 바로 브루크너의 70여년 생애를 정리하는 악장이다. 가난했던 그의 초년이 지나가고 음악교사로, 교회 오르간 연주자로 보냈던 젊은 시절과 작곡가로 뒤늦게 입신하여 말년에 오스트리아 황제로부터 평생 연금과 집까지 받게 되었던 세월들이 이 3악장에 압축되어있다. 그 증거는 그의 말년 영광을 책임졌던 후기 교향곡 7번과 8번의 주제들을 3악장에 과거를 회상하듯 슬쩍슬쩍 '자기 인용'한 것에서 엿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브루크너 9번 교향곡은 다 듣고나면 세상을 다 산 기분이 든다거나, 중간까진 긴장감 팽팽하더니 결국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 드는 작품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실제 나의 감상도 그러했으며, 다른 많은 사람들 역시 브루크너 9번 교향곡의 마지막에서 특히 세상사 모두 다 초탈한듯한 깊은 여운을 느낀다는 감상을 이야기 한다.

말러의 교향곡 9번이 '죽어가듯이'ersterbend란 지시로 마무리한다면 여기서는 그가 평생을 신앙으로 연주했던 오르간 소리와 비슷한 호른의 코랄로 조용히 마무리된다. 서정주의 시 <귀촉도> 마지막 구절처럼 "그대 호올로 하늘 끝으로 가신 님아."를 연상케 한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말러가 자신의 작품에 자기 '파토스'를 아낌없이 넣어 작곡했다면 브루크너는 신앙심을 작품 속에 녹여내었다. 말러의 제자인 브루노 발터(Bruno Walter, 1876-1962)는 "말러는 언제나 신을 찾아 헤맸지만, 브루크너는 신을 찾은 사람이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진정한 브루크너의 마지막 기도가 되었고, 비록 미완성이라고는 하나 그의 깊은 신앙심을 느끼기엔 충분한 작품이 되어 오늘날까지 남아 있게 되었다.


2016. 2. 6.


덤, 그리고 덧.


지난 1월 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크리스토프 에센바흐와 서울시립교향악단이 함께 연주했던 실황 공연을 듣고 큰 감동을 받은 바 있다. 그 이후 며칠동안은 거의 브루크너 9번 음반만 파고들었었는데, 브루크너 9번이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주변에 이야기 하면 어떤 음반을 들어야 할지 추천해달라는 요청이 잦았다. 여기에도 '덤'으로 그리고 '덧'으로 추천 음반을 하나 남겨보려 한다.


아무래도 작곡가가 죽음을 앞두고 만든 작품이었던만큼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마지막 실황 녹음이 작곡가의 정서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하여 출시된 즉시 구입했던 음반이다. 아바도는 2013년 8월 스위스 루체른에서 이 작품을 연주한 후 몇 달 뒤 2014년 1월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의 브루크너 9번 교향곡 역시 더이상 어떤 말을 붙일 것 없는 명반이다. 앞서 소개한 아바도의 마지막 녹음과 분위기가 흡사하면서도, 조금 더 기도 또는 명상하는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해석으로 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