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나무의 씨앗>, 이 영화의 존재 자체가 '용기'. 그것도 목숨보다 고귀한.
오늘 아침 출근 길. 이란에 대한 미국의 공격 관련 소식을 접하게 된다. 피상적으로 이란이라 하면, 우리가 흔하고 쉽게 생각하는 이슬람 = 아랍, 이라는 공식과는 일단 다르다는 것 정도는 난 알고는 있었다. 전통적인 아라비아가 아닌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들이며, 현재에는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고는 있으나 미묘하게 다른 그런 나라. 하지만 결국 내가 이란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은 앞선 표현의 반복이지만, 결국 '피상적'인 것들이었을 뿐이다. 이번에 본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을 계기로 이란에 대해 좀 더 많은 인터넷 상의 자료와 책, 글들을 보고 공부를 좀 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복잡한 역사를 가진 곳이다. 그리고 그 복잡한 역사와 내부 사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본격적으로 이 영화 이야기로 들아가보자. 이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종교경찰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고 결국 죽음에 이른 여학생으로 인해 발생한 2022년 히잡 시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87년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박종철이란 청년에 대해 선배 박종운은 어디에 있느냐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의 고문 끝에 사망한다. 그러나 당시 경찰 당국은 "책상을 탁 치니 (박종철이) 억 하고 죽었다"는 말도 안되는 변명을 내세운다. 이는 수많은 이들의 분노를 일으켜 6월 항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신군부 독재정권이 무너졌다.
2022년의 이란에서는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흐사 아미니라는 학생에 대한 종교경찰의 폭행으로 인한 사망임이 매우 의심됨에도 불구하고, 당국은 "지병인 뇌출혈로 죽었다"는 석연치 않은 해명을 내세운다. 이는 많은 이란인들의 분노를 일으켜 2022년 히잡 시위가 일어난다. '혁명'으로 세워진 정부에 대해서. 헌데, 보통 '혁명'이라 하면,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조금 더 민중을 위한 체제로의 이행을 생각하는 것이 보통일 수 있겠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그리고 실제 이란 사회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다. 왜일까?
분명 영화 내에서는 '혁명 정부'이자 '혁명 사법부'라는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혁명'은 이미 40년도 더 전의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꽤 최근 현대에 까지 존재했던 이란 제국이 무너지고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세워지게 되는 그 사건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부분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그냥 혁명이 아닌 '이슬람 혁명'이라는 것이다. '이슬람 혁명'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이 영화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1979년 이란 제국이 무너지고, 지금의 이란의 정식 국호인 '이란 이슬람 공화국'으로 이행되는 혁명. 이란 이슬람 혁명이라 불리운다. 그냥 혁명이 아니라 '이슬람 혁명'이다. 이는 '공화국'으로 이행하는 혁명이긴 했다. 국왕이 아닌 대통령과 총리, 그리고 국회의원들을 선출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오히려 이란 제국이라 불리웠을 때 보다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렇다. 이란은 실제로 정치학자들 사이에서도 세계 어디에도 이런 나라가 없으며, 이상하다는 이야기가 절로 나올 정도로 아주 특이한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다. 바로 '실존'하는 '신정국가'라는 것이다. 이란에도 선거로서 선출되는 국회의원이 있고, 대통령, 총리도 있으나, 사실 그 위에 시아파 이슬람 율법학자이자 '진짜 최고지도자'인 '라흐바르'가 존재한다. 이는 겉으로는 이슬람 시아파의 율법학자라 하지만, 실질적 '최고지도자'이자 '국가 원수'이다. 그 이유는 바로 일반적으로 우리가 '국가'라 부르는 곳, 세계 어느곳에서도 찾기 힘든 매우 -초월적-인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선출된 대통령도 자신의 힘으로 파면할 수 있으며, 라흐바르는 종신직이다. 분명 이란은 '공화국'이라면서도, 라흐바르가 선포하는 '신의 뜻'에 따라 국가가 통치된다.
자, 더 이상의 라흐바르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서는 차치하도록 하자. 어쨌든 이란이란 나라에 대해서 알면 알 수록 정말이지 여러가지 생각과 감정이 꼬이고 얽힐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란과 우리 대한민국간의 관계를 상징하는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와,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서울로를 떠올려도 그렇고, 바로 이 영화의 배경이자 실재했던 사건인 2022년 히잡시위 (사실, 이는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등. 그리고 이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 (정확히는, 신성한 '무화과 나무'의 씨앗)>의 존재 자체가 '목숨을 건 용기'라는 사실 등. 생각과 마음이 그저 복잡해지기만 한다.
나는 그저 오직 바라건대, 단 한가지. 평화가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슬람 율법의 엄격한 적용보다, 평안한 일상을 원했던 영화 속 두 자매. 언니 레즈반과 동생 사나의 말 처럼. 그러나 자매를 맡은 두 주연배우는 현재 고국 이란을 떠나 망명중에 있다고 한다. 감독은 이미 이란 정부에 의해 갖은 탄압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 때문에 이 영화의 존재 자체가 '목숨을 건 용기'라는 것이다.
* 노벨 평화상을 향해 눈 희번덕 거리는 저기 아메리카 대륙에 노란머리의 사내가 있다길래, 평화를 찾아오랬더니 오히려 세계 3차대전을 일으킬까 걱정이 든다. 역사에 이름이 선명히 기록되는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으나, 부디 가급적 명예로운 방법을 선택하기를 바랄 뿐이다.
** 특히 최근 나는 세타레 말레키(자매 중 동생, 사나 역)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 하였다. 그녀의 계정을 통해 이란의 최근 소식에 대해 순전한 이란사람, 그러나 이란의 평화와 자유를 갈망하는 한 사람의 시각으로 접할 수 있어 많은 공부가 된다. (번역기를 사용하여 간간이 보는 중.)
*** 영화를 본 시기는, 이미 수 주 전이나 이제서야 이 영화에 대해 글을 남긴다. 그 마저도 영화 그 자체가 아닌, 영화의 겉을 둘러싼 여러가지 것들에 대한 주마간산식. 제대로 글이 나오지 않으니 걱정도 되고, 부끄럽기도 하다. 요즘 그런 삶을 살고 있다. 부끄럽다.
2025. 0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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