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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 幻の光

이타미 주조, <담뽀뽀>에 관한 잡설 메모.

by 이웃집박선생 2025. 3. 4.

1. 한국화된 중식의 대표주자가 짜장면이라면, 일본화된 중식의 대표주자는 라멘이다. 라멘은 시나支那소바 또는 중화소바(츄카소바)로 불리우기도 하고, 실제 아직도 몇몇 라멘집이나 일본식 중화요릿집에서는 그런 명칭으로 라멘을 내어오기도 한다. 우리 한국인들 중 짜장면 싫어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욱 힘든 일이듯, 일본인들 중에서도 라멘 싫어하는 사람 찾는 것도 힘든 일이다. 대중화, 그 이상의 대중화 된 음식이자 '토착화'에 성공 그 이상의 성공을 한 외래 음식.


2. 이타미 주조 감독의 영화 <담뽀뽀>는 맛있는 라멘을 만들기 위한 도전과 성공 정도로 요약 가능 하겠다. 중간중간 '먹는 행위'는 결국 '본능'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뜬금없는 씬들이 간간이 등장한다. 이 '본능'을 자극하는 야시시한 장면은 주로 야쿠쇼 코지가 담당한다. 젊은 시절의 야쿠쇼 코지는 상당히 섹시가이였음을 알 수 있다. <담뽀뽀>가 1985년 작품이고, 야쿠쇼 코지가 1956년생이니 20대 시절의 야쿠쇼 코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는 작품이다. 그는 엄청난 섹시가이였다.

3. <담뽀뽀>엔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이 자주 쓰인다. 자주 반복되어 들리는 작품은 교향곡 1번 <거인>과, 5번의 4악장 "아다지에토"가 가장 자주 들린다. 뭔가 '본능'을 자극하거나 아예 야시시함 없이 로맨틱한 부분에선 '아다지에토'가 들리며, 맛있는 라멘을 만들기 위해 도전을 결심하며 교향곡 1번 <거인> 1악장이 들려온다. ("거인이 잠에서 깨어난다."는 의미를 쓰기 위함일까) 말러의 음악과 라멘이 무슨 관계가 있는건지 난 잘 알 순 없지만, 조만간 말러 교향곡을 틀어두고 라멘 한그릇 먹어봐야 할 것 같다. 

4. 영화 속 이야기 자체는 상당히 뜬금없다.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되어 혼자 아들을 키우는 라멘집 <라이라이켄>을 운영하는 주인공 '담뽀뽀'. 트럭운전사 둘은 지나다가 우연히 <라이라이켄>에서 라멘을 먹고난 뒤, 가게 내의 단골 손님을 가장한 동네 양아치들과 한바탕 몸싸움을 벌인 뒤, 그 라멘집을 최고의 라멘집으로 만들어보겠노라며 '라멘 탐험'을 시작한다. 정말 뜬금 없다. 뭔가 엄청난 사고회로를 돌려가며 볼 필요는 없는 영화다. 그렇다고 하여 덜떨어지고 못된 영화냐 하면 그건 아니다. 정말 좋은 영화다. 그러나 안 좋은 점이 딱 하나 있으니, 이 영화를 보면 맹렬히 라멘이 먹고 싶어진다는 것. 극 중에서는 '챠항'이나 '교자'는 나오지 아니하나, 그것 마저도 먹고싶게 만든다. 결국 보는 이로 하여감 심경의 변화를 이끌어낸다면 그건 그냥 잘 만든 영화 아닐까. 그것도 '본능'중 하나인 '식욕'을 이끌어내니까.

5. 대만영화 <음식남녀>를 또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다. 여긴 주인공 자체가 특S급 요리사인 영화다. 세 딸을 키우는데, 각자 아버지인 주인공을 떠나 자기만의 삶을 살려 한다. 가족은 매주 일요일마다 '진수성찬'을 앞에 놓고 가족모임을 하지만, 이 가족 모임이 조금씩 그 의미를 잃어가거나 변주하다가 끝내 주인공은 밥상머리 앞에서 '폭탄선언'을 하고 마는데... 

6. 최근 식욕 자체는 있으나, 내 식사량이 급격히 줄어버려 무슨 안좋은 일이 있나 하는 약간의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아직 30대라 죽음을 생각하기엔 너무 이른 나이기도 하고, 방금 점심식사도 먹는둥 마는둥. 너무 빨리 포만감이 드는게 이거 이상하다 싶기도 하고... 


7. 아무튼 '먹는 이야기'가 담긴 영화에 요즘 천착해있다. 일단 지금 당장은 내가 식사량이 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줄어버렸다지만, '먹는 것'을 보는 그 자체도 상당히 즐겁다.

2025.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