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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목소리 星の声

Mahler Symphony No. 2 - '부활'(Auferstehung), 제멋대로 쓰는 감상.

by Fred.Park 2020. 11. 18.

1. 말러 교향곡 5번 1악장엔 대놓고 "장송행진곡"Trauermarsch이란 제목이 붙어있지만, 2번 교향곡 1악장 역시도 그런 분위기를 팍팍 내어준다. 대체로 말러 교향곡 2번은 영웅의 죽음과 과거 회상, 그리고 운명의 비웃음, 부활을 준비하며 힘을 얻고 모든것을 이겨내고 부활하는 모습 뭐... 블라블라. 이런식으로 감상을 요약할 수 있겠는데,

2. '장송행진곡'은 말 그대로 죽은 이의 장례식에서나 들릴 음악. 이래저래 많은 사람들의 경사에 갔던 만큼 흉사에도 갈 일이 많아진 삶인지라 언젠가 한번은 '죽음'에 대해 혼자 술을 마시고 깊은 고민에 빠진 일이 있었더란다.

3. 실험실에서 다루던 작은 생명체가 내 손에서 죽어가는 것도 그렇고, 학부시절 해부학 실습때나 expire의 상황을 보던 때나. 집안 어르신의 임종을 지킬 때나. 뭐 그런 일들이 복잡하게 뒤섞여 생각이 나는 밤인데, 그보다는 내 스스로에 촛점을 맞추어 더 고민을 때려보기로 했다. 그런데 지금 이 부분의 글을 쓰던 도중, 1악장 마지막의 '하관'이 끝나버렸다. 현악의 피치카토는 그 위에 흙을 뿌려준다.

작곡가의 '지시'대로 5분동안 잠시 숨을 고르고 2악장을 듣기로 한다.

맨 아래를 보자. 5분 쉬라고 작곡가가 친히 '지시'하고 계신다.

4. 학부시절 과내에 고전음악감상반을 만들려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가장 큰 원인은 내 능력부족이었다. 그리고 내 내적인 능력 이외에도 외적으로 보이는 나의 '이미지'도 문제였다. 학점이 높을 수록, 교수님과 가까울 수록 '인격자' 대우를 받는 나의 모교에서는 언제나 난 '문제아', '유급후보생'일 뿐이었다. 인정할 밖에. 나 공부 열심히 안한 놈이다. 그리고 실제로 학교를 정말로 사랑하는 마음에(?) 등록금 한번 더 내기도 했으니 말이다. 쨌든, 만약 고전음악감상반이 정말 만들어졌다면 가장 첫 모임의 음악으로 바로 이 말러 교향곡 2번을 올리고 싶었었다.

5. 이어서다. 그래도 뭔가 학부생 시절엔 '할 말은 하는 놈'이미지도 있었다. 어디서 읽거나 들은 이야기긴 한데, 한 대기업 중역이 "할 말은 하는 사람 이미지가 되면 사장 부사장 회장 이런건 못될 순 있지만, 반드시 중요한 위치를 가지는 사람이 될 수는 있다."는 말을 했었다고. 아, 아마도 권석천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의 저서, <사람에 대한 예의>에서 본 이야기일 것이다.

여전히 인격적 결함이 많은 사람이지만, '할 말은 하'되 세련되게 하는 방법을 연습해보는 중이다. 뭐, 지극히 사적인 자리에서는 여전히 편함 그 이상으로 막말도 하고 친구들을 욕과 별명으로 시원하게 놀려주고 불러주는 일이야 당연히 죽을때까지 하고 살 것이지만, 그정도로 친하지는 않은 이들과 어울리는 방법에 대한 '품격'마저 떨구고 싶진 않아서였다. 아, 오히려 더욱 친한/친할 사람일수록 결정적인 부분에서 더욱 격을 갖춰 대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 참. 가진건 없지만 어디가서 '못난놈'으로 불리울 삶은 살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는 있어야지.

6. "그대가 받은 고통은, 그대를 하느님 앞으로 이끌리라!"라는 가사로 마쳤다. 그 마지막 악장도 다 끝나고 여운만 남아있다. 이제 이 공간엔 음악은 전혀 없고,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와 저 멀리서 간간이 들리는 공항대로 달리는 자동차 소리 정도 뿐이다. 옛날에 소위 '부잣집'이었던 친구의 집에 놀러갔다가 '용의검사'를 당하던 일이 떠오르는데, 상당히 모욕적인 일이긴 했지만 지금은 가끔 떠오르면 피식 하고 웃어버릴 일이 되었다. 하긴 그때 아니었다면 언제 내 머리에 이蝨가 사는지, 내 책가방에서 바선생이 튀어나올지, 내가 몹쓸 피부병을 옮기고 다니는 놈인지 아닌지 확인해볼 수 있었던 때가 또 있었을까 싶다. 어디가서 지저분하단 소리 안듣고 살게 한 것도 그들 덕분일지도 모른다.

근데, 그 양반들. 지금 잘 살아는 있을까? 진심 궁금해진다.

- 일관성이 없는 글들이다. 그러나, 오랜만에 말러 교향곡 2번을 들으면서 되는대로 쓴 글이다. 밖에 널리 보여질 가치는 없겠지만, 스스로는 쭈욱 남겨두고 싶은 마음에 페이스북에서 블로그로 옮겨왔다.

 

2020.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