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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목소리 星の声

박효신, <야생화> Special Version (Pf. 정재일)

by Fred.Park 2021. 8. 2.

1. 기온상으론 그리 덥진 않지만, 어제부터 내린 비로 인해 뭔가 습하고 짜증스러움이 물씬 느껴지는 그런 오전이었다. 그럼에도 환자분들은 이곳을 찾아주셨고, 나는 어떤 분에게는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같은 이야기(정확히는 잔소리)를 해주고, 같은 처치를 해주고, 같은 인사로 돌려보내기도, 또 다른 어떤 분에게는 처음과 다른 이제와는 전연 다른 이야기(정확히는 잔소리)를 해주고, 다른 처치를 해보고, 또 다른 인삿말로 돌려보내준다. 그렇게 오전 진료는 마무리 되어간다. 어제는 모처럼 일찍 잠을 청했던 덕에 그렇게까지 힘들고 지치진 않는다. 참 다행이다.

2. 지금 매일매일 밥값과 술값을 버는 곳은 가수 박효신씨의 출신지이기도 한 곳이다. 박효신 노래를 작은 볼륨으로 내 업무 공간에 깔아두고 있으니, 한 환자가 "효신이 노래 정말 잘하죠."라는 말로 운을 떼기 시작한다. 알고보니 부천동중학교 - 시온고등학교 동창이었다고 한다. 물론 환자분은 "효신이"라고 말했지만, 진짜로 가수 박효신씨와 어느정도 친분이 있는지 여부를 따져볼 수는 없다. 그와는 별도로 그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해주면서 대화가 이어지게 되었다. 그 역시 진실은 저 너머에 있을 순 있겠지만, 그냥 그 자체로 꽤나 흥미로웠다.

소위 말하는 '흑역사'이런건 아니었다. 지금 우리에게 아주 잘 알려진대로 '신비주의' 박효신은 전혀 '컨셉'이 아니라고 한다. 학창시절부터 노래 부르길 좋아하긴 했지만 은근히 부끄러움도 많이 타던 친구였다고. 그러다 본격적으로 데뷔를 하기 위해서였던가. 부천 시온고에 다니던 박효신은 바로 근처 서울 구로구 고척동으로 전학을 갔다고 한다. 그랬던 친구가 지금은 대한민국 최고의 보컬리스트가 되었으니 동창으로선 자랑스럽다, 라는 이야기로 진료 이외의 잡담은 끝을 맺게 되었다.

3. <야생화>는 박효신씨의 자전적인 노래다. 라이브 무대에서는 이 노래를 부르다 박효신씨가 감정에 북받혀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한창 소속사와의 갈등때문에 음악을 그만 둬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심적으로 힘들었을때 만든 노래라 한다. 그저 이 노래를 감상하는 내 입장에서는 박효신씨의 그 생각과 마음이 어떤지 100%는 알 수 없긴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무언가 실패를 겪었을 때, 사람으로 부터 배신 내지는 그에 준하는 팽烹을 당해 심적으로 매우 지치고 힘들때 운전을 하며 이 노래만 계속 반복해서 듣곤 했다.

앨범 버전과는 다른, 바로 이 정재일씨와 함께 작업한 버전이 더 마음에 든다. 앨범 버전 뒤에 깔린 인위적인(?) 음이 제거된, 오직 피아노 하나만을 두고 박효신은 노래를 부른다. 조금 더 마음 저 깊은 곳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4. 지금 뭔가 심적으로 힘이 들어서 그런건 아니다. 이상으로 정말 우연히도 박효신씨의 중학교 - 고등학교 동창인 분이 찾아왔기에 그냥 생각나서 꺼내본 이야기들이었다. 이 노래를 다시 내 업무공간에 깔아둔 이유를 굳이 우겨서라도 찾아내보자면, 최근 몇 년간 겪었던 '안좋은 일'들을 어제 잠들기 전에, 그리고 오늘 출근하면서 '왜'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내 삶은 전혀 위험하지 않다. 앞으로 내가 엄청난 모험을 감행하거나 멍청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 한 심하게 흔들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 언제 또 '왜'를 생각할 일은 수도 없이, 지금까지 그랬던 것 보다 더 겪을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나 유난히도 춥게 느껴졌던 지난 겨울을 떠올리니 가사 하나가 계속 귀에 맴돌아서다. "살아갈 만큼만, 미워했던 만큼만, 먼 훗날 너를 데려다줄 그 봄이 오면 그때 다시, 나 피우리라."

이미 올해 봄은 지나갔고, 내년은 또 어떨지 희망은 가져보려 한다. 사소하게는 코로나 시국이 어느정도 안정되어 잠시 이 나라를 떠나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또 어느정도 '내 일'이 번창하길 바라는 희망을, 나와 알고 지내는 사람에겐 적어도 건강상의 문제는 없길 바라는 희망을. 무엇보다도 나 역시도 누군가에겐 좀 '자랑스러운 친구/동창놈'이 될 수 있으면 싶은 희망을.

박효신씨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