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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목소리 星の声

말러, 교향곡 5번.

by Fred.Park 2020. 2. 28.

 

 

 

 

신체적인 피로는 잠을 자서 풀어주고, 정신적인 피로는 음악을 들으며 풀어주는게 좋은 법이다. 첫 악장 트럼펫 팡파르는 딱 듣자마자 "어, 이것은 결혼 행진곡 이난가!(정확히는 멘델스존의 '축혼' 행진곡이지만)"라고 느끼다가 어느새 뭔가 어색한 네번째 멜로디에 갸우뚱 하게 될 것이다. 첫 악장은 누군가의 결혼을 축하한다거나, 어느 기쁘고 즐거운 일을 기념하고자 하는게 아닌 "장송행진곡"(Trauermarsch)이기 때문이다. 대놓고 악장의 이름이 그러하다. 그냥 들어도 비극적이고, 주인공이 한없이 세상의 매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모습이 나오는 영화를 떠올리며 들어도 좋을 그런 작품으로 느껴질것이다. 일단 1악장은 악장 제목부터가 대놓고 그러하기 떄문이다. 장송행진곡.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노래다.

 

그러다 2악장, 3악장으로 갈수록 어둡고 축축하며 희망 그 비슷한것 하나 찾아볼 수도 없는 곳에 차츰 볕이들듯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4악장 아다지에토Adagietto를 기점으로 '환희'에 가득찬 말러의 심장 박동을 듣게 된다. 4악장에선 현악 5부를 제외한 다른 악기가 모두 침묵하는 '절제된' 감정을 보이더니 마지막 악장에선 그저 한껏 기뻐한다. 비록 이후 파경 그 이상의 아픔을 안겨주었다곤 하나, 말러에게 있어선 사랑하는 아내 알마 쉰들러(결혼 후 성을 '말러'로 고침)가 곁에 있었으니 그 마음 충분히 이해 된다. 여러 면에서 '경계인'으로 살 수 밖에 없었던 말러는 그나마 알마를 통해 자신이 가진 마음의 상처를 싸맬 수 있었으리라.

 

나에게도 그럴 일이, 혹은 그 비슷한 일이라도 있을지, 하고 잠깐 부질없는 생각을 하는 금요일 밤이다. 몸도 피곤하지만, 최근 정신적으로 피곤한 정도가 더 깊었기에 오늘은 퇴근한 이후 그 누구와도 만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집에 콕 틀어박혀 음악만 듣고 있다. 그러다 나 역시도 터질듯이 기쁜 마음을 아다지에토 악장처럼 '절제된' 모습으로, 또 마지막 5 악장에서 아낌없이 한껏 터뜨려줄 수 있을 그럴 일이 있을거란 희망으로 꺼내 들어 턴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2020. 02. 28. 

 

너무나도, '점잖은'(?) 금요일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