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냄새 本の匂

강준만, <개천에서 용 나면 안된다>

이웃집박선생 2025. 4. 10. 21:16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 되어야지?"

 

- 거짓말 안 보태고, 나는 매우 어린시절부터 저 말에 물음표를 안고 살아왔다. 나도 소위 '우등생'이라 불리웠던 놈이었지만, 딱히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훌륭한'것인지에 대해서 그 누구도 딱 떨어지는 대답을 해주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애초에 가지도 않게 되었다. 오직 물음표만 가득할 뿐이었다.

- 공부를 열심히 하는게 나쁜건 아니다. 다만 숫자로 쓰여지는 학과 성적만이 '공부'의 의미로 축소되고, 오직 '타인을 무시할 권리'를 가지려 아둥바둥 애쓰고 사는게 훌륭한 삶이라 치환이 되었다는 생각이, 한 스무살쯤 부터 슬슬 들기 시작했다. 정석 수학 문제를 풀고, 수능 모의고사 시험지 문제를 푸는 것 만이 공부인가? 전문계고에 간 친구들이 기술 연마하는건 공부가 아닌건가?

-그러면서도 나도 소위 '출세'가 고프고 마렵고 목마른 적은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그러했는지를, 스스로가 했던 행동에 대해서 스스로가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을 위한 출세였고, 출세하면 무엇을 할지 내 스스로가 설명을 못하고 있다. 지금도 솔직히 모르겠다. 그 시절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필름이 오랫동안 끊겼다 이어졌다.

- 최근 강준만 교수의 <개천에서 용나면 안된다>는 책을 보니까 내 이런, 오랜 생각이 더욱 강해지게 되었다. 이 책은 부단한 노력을 통해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어나는 사람이 없어야만 한다는게 아니라 '그랬던' 사람들이 훗날 결국 자기부정과 모순에 이르는 것을 경계해야 함을 논한다. 여기서 자기부정과 모순은 개천에서 어려운 환경을 딛고 속칭 '난사람'이 된 뒤,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거나 더 나아가 자신이 자랐던 개천을 메워버리는 행위 등을 이른다. "이런 씨발 천박한 것들!"이라 외치면서. (본인이 그랬던 것을 잊기 위한 몸부림인지. 열등감의 표출인지. 그건 본인만 알 일이겠다만.)

- 그렇게 '훌륭한', '공부 열심히 한' 사람들이 오늘날 무엇을 하는지를 라이브로 잘 보고난 후, 더 많은, 더 깊은 생각에 잠겼으나 곧바로, 이내. 깨달았다. 내가 어린시절부터 가져왔던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저 자들은 '훌륭하지 않다'는 것을.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공부했노라고, 시험에 합격했노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내 복부에 지방을 조금 더 채우기 위해 언제든지 이웃들을 버리고 떠날 준비가 된 저 시험 엘리트들의 민낯. 더 나아가 자신만의 정신세계에 푹 빠진 어떤 '엘리트'는 대규모 유혈사태까지 일으키려 들었다. 불과 4개월 전의 우리가 사는 여기서 일어났던 일이었다. 천하의 <조선일보>마저도 제대로 된 가정에서 바르게 자란 사람이라 극찬했던 그 사람이 저지른 일 말이다.

- 그렇게 우리는 그 일에 동조하고 또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기름을 부어대던 또 다른 '시험 엘리트'들. '공작 각하'들의 민낯을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정말로 엄청난 '노오력'하셨음은 가슴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그 자리로 올라가는 과정인 '시험'과 그 자리 자체가 남들에게 이새끼 저새끼 하는 업무, 더 나아가 언제든지 남의 목숨까지 위협해도 괜찮은 업무를 담당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글쎄다. 이쯤이면 차라리 누가 시원하게 이야기좀 해줬으면 좋겠다. "응. 나는 세상에 대고 나의 힘을 보여주리라! -하려고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사람이 되었어!"라고.

- 앞서 말했듯. 한때는 출세 마려웠고 고팠고 목말랐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을 내려놓고 버렸으며, 더 나아가 '비교'하는 일도 점점 내려놓게 되었다. 거짓말 하나 안보태고 심적으로 매우 편해지게 된다. 그런데 나의 이 심적 안위를 뒤흔든 저 '공작 각하'놈들은 용서가 안된다. 나는 그저 조용히 그들을 심판하는데 작은 힘이나 보탤 생각이다.

2025. 4. 10.